등단 50년을 넘긴 마종기 시인이 최근 열두 번째 시집 '하늘의 맨살'(문학과지성사)을 낸 데 이어 50년간 발표한 시 가운데 50편을 고르고 거기에 얽힌 사연을 실었다.
여기엔 최인호의 첫 장편소설 '별들의 고향' 첫머리에 전재한 시 '연가 4'에 대한 사연도 들어 있다. 이 시의 대상은 다름 아닌 당시 이화여대 1학년생으로 깜짝 결혼을 했던 누이동생. 이혼과 재혼, 홀로서기의 과정을 쓴 '이혼 그리고 홀로서기'의 저자 마주해 씨 얘기다.
1부 '해부학교실'은 미국에서 밑바닥 생활을 하며 무지막지한 고통의 시간을 보낸 수련의 시절 얘기, 2부 '당신 사랑은 남는다'는 70, 80년대 수련의로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고국에 대한 향수, 그리움, 안타까움을 담고 있다.
3부엔 시인의 대표 시집으로 꼽히는 '그 나라 하늘빛'의 수록작들이 실려 있다. 아슴아슴한 첫사랑 얘기, 피아니스트 폴리니 연주회장에서 본 환상 등 꿈을 일깨운다.
그의 시중 제일 많이 읽히는 '우화의 강 1'에는 그의 시에 대한 태도, 시작법이 들어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화가 장 뒤뷔페 특별전에 선보인 화가가 그려 직접 책으로 묶은 '메트로'를 본 충격에서 나온 이 시를 통해 시인은 쉬운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계속해서 더 쉽고 간단한 시를 쓰고 싶다. 그래서 가끔은 이해하기 어렵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상살이에서 이해하기 쉽고 받아들여지기 쉬운 시, 있는지 없는지조차 잘 분간되지 않는 '있는 것'이 되고 싶다. 무공해 공기나 돌멩이 같이 예쁘지 않아도 확실한 시를 쓰고 싶다."
시에는 개인사의 아픔들도 녹아 있다. 1965년 군인사법 94조에 따라 감방에 갇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일, 이민생활을 시작한 동생이 무장강도에게 목숨을 잃은 일 등 별이 된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의 시가 조용히 마음을 흔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