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명절 앞둔 재래시장은 지금 ① / 중부시장 ㆍ 신중부시장

국내 최대 규모 건어물 전문시장 ‘명성’

산지직송, 제품신선ㆍ가격저렴 인기

실속추구 쇼핑객들의 최적지 평가

주차장 등 현대화 필요성 제기

 

 중부시장은 오장동과 예관동 그리고 을지로 4ㆍ5가 걸쳐 광범위하게 펼쳐진 공간이다. 그 안에 들어서 작은 통로를 이리저리 헤집고 다니다 보면, 카프카 혹은 보르헤스의 미로를 걷는 느낌 또는 미궁에 빠진 테세우스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혹한의 날씨 속에서 첫날 취재는 그렇게 별다른 소득 없이 약간의 감기 기운만을 얻은 채 마감해야만 했다.

 

 다음날 상인연합회 사무실에서 정창수 회장(해산물 납세조합장)과 마주 앉았다. 정 회장은 현대화사업의 단면도 등을 보여줬다. 이 사업은 안타깝게도 무산됐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재래시장 가운데서도 중부시장은 특히 낙후돼 있는 상황이다.

 

 정 회장은 “우리 상인들은 주차장 건립을 절실하게 바라고 있다”면서 “주차장 건립과 화장실 문제 등을 해결하고 쾌적한 쇼핑환경을 구축해 고객이 많이 찾아올 수 있도록 우선 구청에서 적극적인 지원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회장은 지난 2004년 취임 이후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차곡차곡 계획을 진행했다. ‘재래시장육성을 위한 특별법’에 의해 ‘신중부시장’ 인정과 상인연합회 등록을 2005년 10월17일자로 마무리했다. 현대화사업 지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1957년에 중부시장 주식회사로 개설 운영돼 온 부분을 제외한 영역에 대해 신중부시장으로 인정을 받고, 중부시장과 신중부시장 전체의 상인연합회를 등록한 것이다. 그렇게 꿈은 현실에 조금씩 가까워지는 듯했지만 난관에 봉착, 결국 현대화 사업은 무산됐다.

 

 상인들은 좋은 쇼핑환경 구축을 위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은 다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친절봉사다. 정 회장은 “중부시장에서 점포를 오래 운영해 오신 분들이 많다 보니 카드 결제 방법을 몰라 고객과 마찰을 빚는 경우도 있었는데 지금은 다 사라졌다”면서 “고객만족을 위한 서비스에 상인들이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고 전했다.

 

 정 회장을 인터뷰하고 나온 뒤 중부시장 입구에 서서 또 한 번 망설였다. 멸치 품목부터 시작해 김을 거쳐 굴비를 취재하는 식으로 체계를 세운 밀도 높은 취재활동이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현실은 매정하게도 허용하지 않았다. 크고 작은 수많은 출입 게이트와 골목과 이어지고 막히는 통로와 점포들 속에서 결국 택할 수 있는 건 프루스트적 순행뿐인 듯했다.

 

 맛깔스레 간간짭짤한 냄새를 따라가다 보니 주렁주렁 엮인 굴비들과 마주하게 됐다. 한 상인 아주머니가 노년의 고객들에게 상품안내를 하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여 카메라를 들었다.

 “간판에 ‘참조기’라고 씌어 있는데, 어떤 거죠?”

 “조기에도 종류가 있어. 국내산도 있고 외국산도 있고, 많은데, 이건 참조기야.”

 

 선문답을 뒤로하고 계속 걸어가, 또 다른 점포에 멈춰섰다. 굴비 박스 작업을 능숙하게 하고 있는 또 다른 상인은 새벽 3시에 나와 계속 일하는 중이었다. 그 상인은 “도매만 하는 경우에는 일찍 문을 닫지만 소매까지 병행하기 때문에 늦게까지 한다”면서 “죽기 살기로 하는 것”이라고 미소지었다.

 

 중부시장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대표적인 건어물 전문 도매시장이다. 그래서 모든 품목의 품질이 좋으면서 저렴하다. 보통 새벽 3~4시부터 도매 영업을 시작한다. 오전 10시쯤이면 도매가 끝나고, 그 후부터는 주부나 음식점 경영자 등이 구매하러 오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오후 6시 이후까지도 영업한다.

 

 갈치 고등어 등 여러 생선 종류 가운데 조기를 절여서 말린 것이 굴비다. 전국적으로 국내산보다는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이다. 대략 20%정도가 국내산이고 70~80%는 수입 제품인 것이 현실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과 우리나라는 해역이 거의 비슷해 같은 바다에서 중국 사람이 잡으면 중국산이고 우리나라 사람이 잡으면 국내산으로 인정된다. 전문가조차도 중국산과 한국산은 거의 구별을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도네시아 등지의 제품은 생김새와 색깔 그리고 크기 등에 있어서 확연하게 구별된다.

 

 대일수산에서 굴비를 판매하는 송재엽씨는 “중부시장에 오면 안전하게 믿을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면서 “먹을거리에 대한 불안감에 있어서 하나의 해결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머릿속에서는 루시드 폴의 ‘고등어’가 맴도는 가운데 굴비들을 지나치니 북어가 눈에 들어왔다. 점잖은 풍모를 지닌 북어가게 상인은 “건태 즉 북어는 말린 명태”라고 친절하게 말하며 “강원도 산지에서 직송해 들여왔다”고 설명했다.

 

 친절한 응대에 용기가 솟아, 설 앞두고 장사는 잘 되는지 묻자 한숨 소리부터 들을 수 있었다.

 

 “그래도 20~30% 정도는 더 팔리지 않을까 싶긴 해요. 사실 3~4년 전쯤부터 대목이라는 개념이 없어진 느낌이 들어요. 설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 특수를 노린 것을 대목이라고 한다면 현재는 그러한 것이 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명절을 앞두고, 한 달 전쯤부터 소비자들이 선물용품 구입을 위해 중부시장에 나와 가격동향이나 상품정보를 알아보는 경우가 많았지만, 근래에는 날씨가 추운 요인 등과 겹쳐 예전보다 못한 형편이다.

 

 괜스레 송구스러워 인사를 하고 또 걷기 시작했다. 대부분 도매와 소매를 같이 하는 건 고객편의를 위한 것이면서 어려운 현실에 대한 타개책의 일환이다. 점점 도매 기능이 퇴색돼 가고 있는 현실을 읽을 수 있었다. 또 지금은 인터넷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권이 형성돼 있어 예전에 비해 소비자들을 많이 뺏긴 것으로 전해졌다.

 

 제일상회에서 북어를 판매하는 김인규씨는 “중부시장의 북어 제품은 중간단계를 거치지 않는 산지 직거래로 그 어떤 곳보다 저렴하다”면서 “산지제품을 선별해 올리기 때문에 신선도 면에서도 최고로 정평이 나 있다”고 강조했다.

 

 좁은 통로에 꽤 많은 사람들이 어깨를 스치면서 눈길을 회전시키며 저마다 갈 길을 가고 있었다. 손님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년 이상으로 보였고, 간간이 테이크아웃 커피를 손에 쥔 젊은이도 발견할 수 있었다.

 

 한 상인은 “요즘 신세대나 젊은 주부들께서 대형유통매장을 선호하고 재래시장은 기피하는 것 같다”면서 “저 젊은 사람들은 알뜰하게 실속을 차릴 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중부시장을 찾는 고객 가운데 젊은 층도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표상 경기와는 다르게 가정장바구니 물가는 이구동성 적신호다. 또 설과 같은 명절 시기에는 물가가 상승한다. 중부시장 상품이라고 해서 값이 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중부시장을 찾으면 확실히 경제적이라고 만난 사람 모두가 입을 모았다.

 

 멸치 가게에서 만난 상인은 “지난해 멸치 어획량이 적어서 가격이 다소 오른 편이긴 하지만 그건 전국적으로 다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중부상회에서 멸치는 판매하는 이중남씨는 “산지직송 입찰 판매에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는 중부시장은 그 명맥을 지금도 잇고 있다”면서 “신선도 높은 우수한 품질의 멸치를 소비자들이 먼저 알아본다”고 귀띔했다.

 

 수북하게 쌓인 멸치에서 풍겨지는 향의 방향을 따라 자연스럽게 오징어 점포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남해물산에서 오징어를 판매하는 김연규씨는 “오징어는 많은 음식에 재료로 쓰이기 때문에 그래도 수요는 꾸준한 편”이라고 말했다.

 

 중부시장에서 30여년 종사한 상인들은 지난 70년대부터 80년대를 거쳐 90년대까지만 해도 장사가 잘 됐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 시절에 비해 지금은 어느 정도로 어려운 것일까. 상인연합회 회원 수를 통해 분석하면, 선어 부서의 경우 예전에는 회원 수가 45~50명 정도였으나 지금은 24~25명 정도로 거의 절반 가까이 줄어든 상황이다. 오징어 부서는 잘 될 때는 회원이 140명 정도가 될 만큼 많았지만 형편이 어려워지자 상인들은 업종 변경을 하고 많이 빠져나가 지금은 40명 정도의 회원이 있다. 다른 부서도 3분의 1 정도가 줄어드는 등 해가 넘어갈수록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중론이다.

 

 중부시장 미로를 걷다 보니 ‘전통시장으로 고객을 모으는 방법 바로 신용카드 거래입니다’라고 씐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다. 또 현대식으로 지어져 우뚝 솟아 있는 상가 건물도 보였다.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하는 가운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며 성장통을 겪고 있는 중부시장은 중구지역의 축소판이었다.

 

 재래시장은 서민경제의 미래다. 시대의 치열한 삶이 고스란히 담긴 공간이며, 당대 민초의 애환이 기록되는 현장이다. 중부시장은 재래시장 호황의 기억을 간직한 추억의 창고다. 반세기 정도 세월의 풍파를 뚫고 우리나라 대표 건어물 전문시장의 명맥을 유지하며 현재도 최대 규모로 건재하고 있다. 민족 최대의 명절, 설을 앞두고 중부시장을 돌아봤다.

 

김 멸치 오징어 건채 노가리 굴비 미역 북어 선어 건태 등 건어물을 비롯해 젓갈류와 농산물에 이르기까지 중부시장의 모든 물품 속에는 설 특수 대목에 대한 상인들의 기대와 설렘 혹은 좌절과 체념까지 담겨 있는 듯했다. 매서운 한파는 체감경기와 일치했고, 따사롭게 내리쬔 햇살은 삶의 열정과 같았으며, 코끝을 스치는 신선한 공기는 미래에 대한,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환유하고 있었다.

 

 

◇중부시장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