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일 충무로 영화의 거리 축제 특설무대에서 장나라가 영화홍보차 게릴라콘서트를 하고 있다.
산산이 부서진 이름,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
충무로 영화의 거리 축제는 화석이 돼 버릴지 모르는 한국영화의 메카 ‘충무로’라는 이름을 설움에 겹도록 부르며, 옛 영광을 부활시키려는 고복의식과 같다.
올해로 여섯 번째가 된 축제는 충무로 영화의 거리 추진협의회(회장 김갑의)가 주최하고 중구와 거북상조회에서 후원해 옛 충무로 전성기를 함께했던 인사 등 내외빈이 모여 미래를 기약하는 의미 있는 자리와 장나라 게릴라콘서트 등 공연이 특설무대에서 진행되는 한편으로 한국영화 90년을 기념해 특별전시회 및 포스터전으로 열렸다.
지난 5일 충무로3가길 충무타워빌딩광장 한 편에 전시된 우리나라 명배우와 영화 포스터는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활동사진의 한 프레임을 뚝 떼어 내, 시간을 붙잡으며 아스라이 멀어진 과거를 되살려 냈다.
‘감자’(1987) 포스터의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김동인 문학의 금자탑! / 변장호 감독의 예술터치! / 정일성 촬영의 영상미학! / 복녀! 그녀는 / 천성적 정염의 노예인가? / 버려진 우리네 여인인가?’
이 속에 ‘문학’ ‘예술’ ‘미학’ ‘정염’ ‘여인’을 비롯한 영화를 규정하는 요소들이 함축적으로 담겨 눈길을 끌었다. 장 뤽 고다르의 ‘사랑과 경멸’(Le Mepris, 1963)을 생각케 했다. 고다르는 브리짓 바르도에게 쏟아질 시선에게 ‘영화란 그런 것이다’라고 시니컬하게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속(續) 별들의 고향’ 포스터의 관능에서는 엘리트 영화인 하길종 감독의 좌절감이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최첨단 테크놀로지가 적극적으로 반영됨으로써 무한 진보하는 듯 느낄 수 있는 영화는 자크 오몽의 표현을 빌리면, 여전히 육체의 예술, 몸짓의 예술, 얼굴의 예술이다. ‘아제 아제 바라아제’(1989) 포스터. 파르라니 삭발을 하고 어떻게 표현하기 힘든 강직한 기운을 지닌 무표정한 강수연의 앳된 얼굴에서는 성(聖)과 속(俗)이 교차하고 있었다.
윤정희 남정임 문희 ‘60년대 트로이카’와의 만남. 이들 중 가장 영화적인, 비운의 생을 마감한 남정임은 흑백 사진 속에서는 여전히 아름답게 살아 숨쉬고 있었다. 거장 음악가의 아내로, 필름 밖에서도 우아한 모습으로 영화적 삶을 살고 있는 윤정희의 빼곡한 필모그래피 리스트 앞에서 아연한 감마저 들 정도였다. 김지미는 필모그래피와 함께 수많은 수상경력이 채워져 있었다.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70년대 트로이카’ 가운데 장미희가 출연한 ‘겨울여자’(1977) 포스터 문구가 이들 ‘은막의 스타’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이화’는 누구에게나 속해 있고… / 또 ‘이화’는 아무에게도 속해 있지 않다…!’
‘이화’는 곧 트로이카 여배우를 비롯한 스타들이다. 그들은 만인의 연인이지만 결코 소유할 수는 없는 존재들이다.
사미자 선우용녀 김창숙의 젊은 시절 아름다운 모습에서는 세월의 덧없음에 서글픔마저 밀려온다.
고복의식은 죽음을 확인하는 절차다. 하지만 영화의 거리 축제라는 고복의식은 충무로의 새로운 탄생을 예비하는 주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