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말하다/왕의 여인

한 여인의 가슴 저미는 사모곡

"처음으로 되돌아가리라. 태어났던 그 곳으로 돌아가리라. 매화꽃 향내 그윽했던 이른 봄으로 돌아가 한 송이 붉은 홍매화로 태어날 것이리라. 그리하여 내 님 걸으시는 걸음걸음, 사뿐히 지르밟을 수 있도록 흩뿌려지리라…" -본문中에서

 

 정4품 혜인의 작위까지 받은 왕실의 종친녀였던 어을우동은 기생에 푹 빠진 남편 태강수 이동에 의해 소박맞은 뒤 수십 명의 조관과 유생들과 난잡한 관계를 가져 결국 풍기문란으로 사형당한 비운의 여인이다. 저자는 어을우동에 대한 기존의 내러티브를 뒤집어 새로운 어을우동을 창조하고 지푸라기같은 실오라기 하나로 씨줄과 날줄을 얽어가며 어쩌면 실제로 그랬을 것만도 같은 성종과의 사랑이야기를 담아냈다.

 

 유교적인 풍습이 강한 조선사회에 사랑조차도 뜻대로 이루어갈 수 없었던 어을우동, 그리고 성종. 성종은 죽음의 길(죄인)에서도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인자한 인격의 소유자였으나 대신들의 말림에도 불구하고 어을우동에게는 간통죄 하나만으로 참형에 처하게 하고 그녀와 통한 자들을 한차례 국문도 없이 쉽게 풀어줬다. 사신이 어을우동의 죽음에 대해 논평하기를 "김계창이 임금의 뜻을 헤아려 깨닫고 힘써 영합하기만 하였다.

 

소위 시대에 따라서 가볍게도 하고 무겁게도 한다는 것이 율밖의 형벌을 말함이겠는가? 감히 이 말을 속여서 인용하여 중전을 쓰도록 권하였으니, 이때의 의논이 그르게 여겼다" 하였다. 사신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일까?

 

 작가의 말처럼 사건의 진실은 기록이 아닌 당시의 하늘과 바람만이 알 것이다. 매화향이 물씬 풍길 것 같은 봄밤,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어을우동의 가슴 저미는 사모곡에 푹 빠져 보는 것은 어떨까. <김경민 지음/눈과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