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노고단에서 윤광수 교장과 함께 기념촬영한 모습.
10월 6일 날 아침. 우리 흥인 초등학교 6학년 217명은 들뜬 마음으로 버스에 올랐다. 엄마손 잡고 입학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최고학년이 되어 수학여행을 가다니… 스스로가 참 대견한 느낌이 들었다. 버스안에서 재미있는 게임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덧 우리는 부소산성에 도착하였다.
부소산성은 백제의 도읍지였던 부여에 있는 산성으로, 옛날 의자왕이 거느리고 있던 삼천 궁녀가 나라가 멸망하기 직전에 떨어졌다는 낙화암과 세명의 충신들의 제사를 지내는 삼충사라는 절이 있는 곳이었다. 낙화암으로 가는 도중에 청솔모가 나무에 기어오르는 것도 보고, 서울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여행이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해방감에 즐거운 마음이 들었다. 가파른 낙화암 바위 위에서 바라보니 발아래 금강이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듯, 마치 옛날 백제의 의자왕이 된 듯이 장엄한 기분마저 들었다.
부소산성을 떠나 도착한 곳은 부여 박물관이었다. 그 곳에는 백제의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중 기억에 남는 것이 백제왕이 쓰던 금관이었다. 어찌나 정교하고 섬세한지 옛날 백제인들의 솜씨가 놀랍기만 했다.
(…중략) 우리는 이몽룡과 성춘향의 이야기가 있는 남원 광한루에 도착하였다. (…중략) 나는 광한루가 무엇인지 궁금했었는데 연못 가운데 있는 정자 이름이라는 사실을 선생님의 설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 곳에서는 춘향이의 그림도 보았는데 생각만큼 예쁘지 않았다. 아마도 옛날의 미인의 기준은 요즘하고는 많이 다른가 보다. (…중략)
다음 날 드디어 두 번째 날의 해가 떴다. 아침을 먹고 바로 출발해서 야생화 박물관에 들렀다. 잠자리 진화를 나타낸 사진도 있고 물에서 사는 잠자리나 곤충을 전시해 놓은 것도 있었다. 나는 꽃으로 만든 작품도 신기했고 희귀 야생화를 볼 수 있어서 참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한다.
그 후 다시 버스를 타고 들린 곳은 경상도와 전라도를 잇는 큰 다리였다. 갑자기 버스가 서더니 아이들이 줄줄이 버스에서 내리는 것이었다. 큰 다리를 걸어서 건넌다는 선생님 말씀에 귀찮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다리위에서 보니 섬진강의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강을 경계로 전라남도 구례와 경상남도 하동이 나뉘어 진다니, 옛날에 이 다리가 없었을 때는 두 마을은 어떻게 서로 다녔을지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화개장터에는 들리지 못했지만 몇몇 아이들은 대신 '화개장터' 노래를 부르며 버스에 올랐다.
너무나 평화롭고 여유롭게 보이는 섬진강을 따라가다 보니 '최참판 댁'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바로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배경이 이 곳이란다. 서희의 방도 구경하고 드라마 <토지>의 촬영 장소를 둘러보기도 했다. 예전의 양반들이 살던 기와집의 구조가 어떠한가를 교과서를 통해 배웠는데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더욱 좋았다. 최참판댁 사랑마루에서 내려다 본 마을 풍경은 참 인상적이었는데, 특히 온 들녘이 노랗게 물들고 수천 개의 허수아비가 서있는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이 사는 것과는 다른 여유를 갖고 살았던 것 같다. 사랑마루에서 내려다보는 내 마음도 가을 들판처럼 넉넉하고 여유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섬진강의 옆에 있는 <평사리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다가 점심을 먹었다. 섬진강 모래밭에서 아이들과 뛰어다니며 장난치고 돈까스를 먹으니 꿀맛 같았다.
다시 버스에 올라 들린 곳은 광양 제철소였다. 그곳에서 우리나라가 철 생산국으로 세계 5위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철판 만드는 것도 직접 볼 수 있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시뻘겋게 달궈진 철판이 물을 향해 돌진하고 치이익 소리와 함께 식어가면서 얇게 펴지는 장면은 정말 신기했다. 철판을 옮기는 도르래의 달그락 소리와 물이 빠르게 증발하는 소리 등 눈과 함께 귀도 즐거웠다. 텔레비전 광고에서 '소리 없이 강하다'라는 포스코의 광고가 다시 한 번 생각났다. 정말 우리생활에서 철이 없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또 바다를 메워서 이렇게 넓은 공장을 지었다니 눈으로 보고도 쉽게 믿어지지가 않는다.
마직막으로 낙안읍성에 들러 성을 따라 걸어보았다. 성을 따라 걸을 때 교장선생님께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주시니 더욱 자세히 알 수 있어 좋았다. 낙안읍성은 해미읍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아주 잘 보존된 읍성이라고 한다. 읍성 안에 있는 초가집에서도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숙소로 들어가서 레크리에이션을 했다. 장기자랑을 할 때는 정말 신이 났다. 우리 반 현영이가 멋지게 '너에게 난, 나에게 넌'을 부르고 게임도 하면서 둘째 날 밤도 그렇게 저물어갔다.
수학여행 마지막 날의 해는 어느 때보다 화창하게 떴다. 먼저 지리산 아래쪽에 있는 화엄사에 갔다. 그리고 제일 기억에 남는 곳!!! 지리산을 올랐다. (…중략) 정상의 봉우리가 보이는 순간 온몸에 힘이 불끈 솟았다. 그리고 고개가 보일 때는 전력질주를 해서 정상에 올랐다. 정상에 오른 그 기분은 정말 말로는 표현 할 수 없었다. '세상이 내 것 같다' 그리고 '그림 같은 장면' 이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말인 것 같다. (…중략) 지리산 노고단까지 올랐다는 자부심에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중략)
나는 이번 수학여행에서 느낀 점이 많다. 지리산을 오르면서 평소에 선생님께서 강조하셨던 협동심이 왜 중요한가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힘들지만 서로 도와서 함께 정상에 올랐을 때 보람도 두 배가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힘든 만큼 보람도 컸던 수학여행이었다. 힘들게 올랐던 지리산 노고단도 떠오르지만, 광양 제철소도 인상 깊었다. 불덩어리 같은 시뻘건 철판이 나오는 것이 놀라웠고 점점 얇아지면서 식어가는 것도 정말 신기했다.
처음으로 간 수학여행은 기대만큼 즐거웠고 이곳저곳 많이 둘러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부소산성에서 광한루를 거쳐, 광양제철소, 그리고 지리산까지. 힘든 여행이었지만 오래 오래 기억에 남을 멋진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