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곳에 가고 싶다 / 섬진강 '재첩', '태안 박속밀국 낙지탕'

섬진강 하구서 섬진강의 진객, 재첩을 만나다

 

섬진강 재첩 채취장면(좌), 재첩정식 삼형제 재첩전, 재첩회무침, 재첩국(우).

 

타우린 풍부한 재첩 해독·숙취 해소에 탁월

입맛도는 초여름 별미, '태안 박속밀국낙지탕'

 

본지에서는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하는 국내 유명 여행지와 축제현장을 소개한다. 현대인들은 바쁜 일상 속에서도 여행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삶의 질을 높이고 있다. 따라서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계절의 특성에 맞는 여행지와 축제현장, 맛집을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한국관광공사는 '맛있는 여행'이란 테마 하에 섬진강의 진객을 만나다 '하동 섬진강 재첩', 집 나간 입맛 되찾아주는 초여름 별미, '태안 박속밀국낙지탕' 등을 선정해 발표했다.

 

◆ 하동의 맛, 재첩

 

섬진강은 전북 진안의 데미샘에서 발원해 경남 하동과 전남 광양 사이의 광양만으로 빠져나간다. 대한민국 산하를 장장 212km나 휘감으며 흐른다. 강줄기가 바다로 빠져나가며 작별을 고하는 섬진강 하구는 섬진강의 진객, 재첩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재첩을 채취하는 풍경뿐 아니라 신선한 재첩으로 만든 다양한 재첩요리를 맛볼 수 있다. 재첩이 가장 맛이 좋다는 요즘, 섬진강변을 따라 하동 여행을 떠나보자.

 

재첩은 강조개에서 유래해 하동 사투리로 갱조개, 가막조개라 부른다. 가막조개는 '까만 아기조개'란 뜻으로 재첩의 생김새를 보고 지은 이름이다. 재첩은 모래가 많은 진흙바닥에서 서식하는 민물조개로 물 맑은 1급수에서 산다. 또 번식력이 왕성해 하룻밤 사이에 3대손을 볼 정도로 첩을 많이 거느린다 하여 재첩이라 불린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서식 환경에 따라 색깔이 다른데, 진흙 펄에서 사는 재첩은 검은색을 띠고, 모래에 사는 재첩은 황갈색을 띤다.

 

요즘 섬진강에서는 진기한 풍경을 자주 접할 수 있다. 바로 재첩을 채취하는 모습이다. 재첩은 7·8월을 제외한 4월부터 10월까지 채취가 이뤄진다. 재첩을 채취하는 광경은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니다. 재첩의 채취 시기, 그리고 물때가 맞아야만 볼 수 있다. 재첩을 채취하는 지역은 하동 읍내 북쪽인 두곡리에서 신월리에 이른다. 섬진강에 인접한 마을에서는 대부분 재첩을 채취하는데, 각 마을마다 채취하는 구역이 각각 나뉘어 있다. 하동과 광양으로도 구역이 나뉘고, 하동에서도 각 마을별로 채취 구역이 다르다. 재첩을 채취하는 방법도 다르다. 어선을 이용해 강바닥의 재첩을 긁어 올리는 형망과 사람이 직접 거랭이라 불리는 도구를 이용해 강바닥을 긁어 재첩을 잡는 도수망으로 나뉜다.

 

재첩을 채취하는 것도 쉽지 않지만, 재첩국을 상에 올리는 과정 또한 매우 복잡하다. 재첩을 가공하는 과정을 잠시 들여다보자. 먼저 재첩을 세척해야 한다. 재첩을 세척하는 과정은 예전보다 손쉬워졌다. 예전에는 두 손으로 비비거나 발로 밟아가며 세척을 했지만, 지금은 전용 전동 기구를 이용한다. 깨끗이 씻은 재첩은 큰 솥에 넣고 삶는다. 주걱으로 10분 정도 저어가며 삶아낸다. 삶아낸 재첩은 채에 받쳐 담고, 그 위에 재첩 삶은 물도 내려 담는다. 재첩 삶아낸 물은 1시간 내로 냉동 보관해야 한다. 금방 쉬면서 맛이 변하기 때문이다.

 

재첩을 삶아냈다고 해서 손질이 완전히 끝나는 건 아니다. 소쿠리에 받아낸 재첩을 껍질과 알맹이로 분리하는 작업이 이어진다. 삶아낸 재첩은 차고 깨끗한 물에 담근다. 재첩이 쫄깃쫄깃해지기 때문인데, 이는 삶은 국수를 찬물에 헹궈내는 이치와 같다. 재첩은 물에 삶는 과정에서 껍질과 알맹이가 거의 분리된다. 찬물에 담가놓은 재첩살은 채에 걸러 10여 번을 더 헹궈내야 음식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끝난다. 5월부터 6월까지 나는 재첩은 산란기를 맞아 살이 가득 올라서 맛이 가장 좋다. 특히 '섭'이라 불리는 물질이 나오는데, 이것이 재첩 국물 맛의 비결이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기수 지역에서 자란 재첩은 육질이 연하고 맛이 좋은데, 섬진강 재첩의 가장 큰 특징이다.

 

하동읍 신기리 일원에는 재첩특화마을이 조성되어 있다. 섬진강 재첩의 명성을 이어가고 재첩을 특화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조성된 마을이다. 재첩을 직접 채취해 음식을 만드는 재첩 전문 식당이 밀집해 있어 재첩요리를 믿고 맛볼 수 있다. 재첩으로 만드는 음식은 다양하다. 재첩국을 비롯해 재첩회무침, 재첩전, 재첩수제비 등이 있다. 특히 재첩정식은 재첩국, 재첩회무침, 재첩전 등 재첩음식과 함께 참게장도 맛볼 수 있어 인기가 좋다. 재첩은 타우린이 풍부해 해독 작용뿐 아니라 숙취 해소에도 효과가 있어 속풀이 해장국으로 그만이다. 필수 아미노산인 메티오닌이 간 기능 개선에 도움을 주고, 악성 빈혈에도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새 턱밑까지 밀고 올라온 여름. 올 여름은 유난히 길고 무더울 것이라는 기상예보를 듣고 있자니 벌써부터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다. 자칫 입맛까지 잃어버리기 쉬운 계절, 충남 태안으로 떠나는 여름 별미 여행을 제안한다.

 

태안 하면 떠오르는 여행지는 안면도다. 멋진 휴양림과 예쁜 펜션, 시원한 해수욕장과 싱싱한 해산물, 게다가 아름다운 일몰까지! 여행지가 지녀야 할 미덕을 두루 갖추었으니 인기를 누리는 건 당연지사. 최근엔 CNN이 선정한 '한국에서 꼭 가보아야 할 곳 50선'에 꽃지 해수욕장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여러 차례 태안을 방문한 여행자들조차 여간해선 안면도 권역을 벗어나지 않는다. '태안=안면도'는 이제 공식이 된 듯하다.

 

하지만 태안 땅에 가볼 만한 곳이 어디 안면도뿐이랴. 안면도 위쪽, 즉 태안반도 북단으로 올라가면 우리가 잘 몰랐던, 하지만 알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될 매력적인 여행지가 또 있다. 여름철 낙지요리로 유명한, 그래서 사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이원면과 원북면이다. 한적하고 아늑한 해변과 푸근하고 정겨운 포구가 있는 이원, 원북 일대는 6월에서 9월 사이에 찾는 것이 정답이다.

 

이름이 박속밀국낙지탕이다 보니 처음 접하는 사람들 중엔 이렇게 상상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박속밀국낙지탕은 박을 파내고 그 안에 낙지를 넣어 끓인 탕이 아니라 하얀 박속을 썰어 넣고 끓인 태안의 향토음식이다. 무 대신 박인 셈인데, 얼핏 보아선 무인지 박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하지만 무가 말캉한 데 반해 박은 무보다는 쫄깃하다는 느낌이다. 개운한 국물 맛을 내는 주인공이자 숙취 해소의 일등공신이 바로 박속이다. 가을철에 수확한 박은 냉동 보관 해두고 다음해까지 사용한다.

 

6월 말부터 9월 사이에 태안에서 잡히는 한입 크기의 작은 낙지, 일명 세발낙지는 맛이 뛰어나고 식감이 부드럽다. 여름 내내 미식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세발낙지에 관한 흔한 오해 중 하나는 '발이 세 개라서 세발낙지'라는 것인데, 세발의 '세'는 '가늘다'는 뜻의 한자어다. 즉 발이 세 개여서가 아니라(모든 낙지발은 무조건 8개다!) 발이 가늘어서 세발낙지인 것이다. 석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반짝 나타났다 사라지는 세발낙지는 10월 이후엔 구경하기 어렵다. 그럼 10월 이후로는 박속밀국낙지탕을 먹을 수 없는 걸까? 그렇지는 않다. 이때부터는 세발낙지 대신 일반 낙지를 쓴다.

 

이원, 원북 일대에는 박속밀국낙지탕 전문점이 많다. 어느 집을 가든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면 맑은 육수에 나박썰기를 한 박속과 파, 마늘, 양파를 넣은 냄비를 테이블로 가져다준다. 육수가 팔팔 끓어오르면 꿈틀대는 산낙지를 통째로 투하, 살짝만 데쳐낸 후 간장 양념에 찍어 먹는데, 야들야들하고 탱탱한 식감이 과연 별미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한다. 한입거리밖에 안 되는 어린 낙지라면 상관없지만, 혹 큰 낙지를 먹게 된다면 다리부터 먼저 잘라 먹고 머리는 끓는 육수에 다시 넣어 좀 더 익혀 먹는 것이 좋다.

 

박속낙지탕이 아니라 박속밀국낙지탕인 이유는 낙지를 모두 건져 먹은 후 수제비와 칼국수를 넣어 끓여 먹기 때문이다. 박속밀국낙지탕은 빈곤했던 시절, 칼국수와 수제비에 흔한 낙지를 몇 마리씩 넣어 먹던 데서 유래한 음식이다. 밀가루로 만든 칼국수와 수제비를 이 지역에서는 밀국이라고 불렀다.

 

어려운 시절을 지혜롭게 극복해온 역사가 담긴 음식인 셈이다. 수제비는 직접 반죽해 일일이 손으로 뜯어 살짝 데친 후 테이블에 내오는데, 두툼하면서도 탄성이 있어 배가 불러도 끝까지 먹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