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설 / 남산에 흐르는 순국선열의 숨결

대한민국의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는 남산에는 나라를 지키다가 순직한 선열들의 숨결이 흐르고 있다. 호국 보훈의 달인 6월을 맞아 가족단위는 물론 학생들도 남산에 산재해 있는 선열들의 숨결을 찾아보는 것도 매우 의미있는 일이다.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옆 장충단공원에는 장충단비, 유정 사명대사, 일성 이준 열사, 파리장서, 순국열사 이한응 선생기념비, 3ㆍ1독립운동기념탑, 유관순 동상등이 있다. 북측 순환로에는 한양공원이 있고 백범광장에는 백범 김구선생, 성재 이시영 선생 동상이 있고 중앙광장에는 안중근 의사 동상과 기념관이 있다.

 

 장충단은 조선 고종 32년(1895)에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사건 당시 일본인을 물리치다 순국한 홍계훈, 이경직과 여러 신하들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제단이다. 조선 중기의 고승인 사명대사는 1558년(명종 13)에 부모가 사망하자 김천직지사(直指寺)로 출가해 신묵(信默)의 제자가 됐다고 한다.

 

그는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정의 근왕문과 스승 휴정의 격문을 받고 의승병 2천명을 이끌고 평양성과 중화(中和) 사이의 길을 차단해 평양성 탈환의 전초 역할을 담당했다.

 

이상설 선생은 헤이그에서 각국 대표와 언론에 을사조약의 부당성과 불법성 그리고 일제의 침략성을 알리는 활동을 했으며, ‘만국평화회의'에 참석, 일본의 침략행위를 세계에 호소했지만 열국의 냉담한 반응에 할복 자결로 대한인의 독립의지를 보여준 인물이다. 이한응 열사는 용인시 이동면에서 출생해 28세 때인 1901년 3월 주한 영국·벨기에 양국공사관의 참사관으로 부임했으며, 이듬해인 1902에는 특명서리 공사에 임명돼 영국에서 외교관으로 있는 동안 대한제국의 위상제고에 노력했다.

 

 유관순 열사는 공주교구의 미국인 여자선교사의 도움으로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입학했으며,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3월 5일 만세시위에 참가하는 등 만세운동이 교과서에도 수록돼 있다.

 

 백범 김구 선생은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교육자, 정치인으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회 주석을 지냈다. 아호는 창암이고, 호는 백범이다. 호는 미천한 백성을 상징하는 백정의 ‘백(白)’과 보통사람이라는 범부의 ‘범(凡)’ 자를 따서 지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황남 해주에서 태어났다.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 해주감사의 요청으로 아버지가 산포군을 조직해 농민군을 진압할 때 참가하기도 했다.

 

 남산에는 이렇듯 순국선열들의 숨결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멀리서 찾지 말고 우리 가까이에 있는 선열들을 찾아보고 그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보는 것이야말로 현장교육이며 산교육이 아닐까. 호국보훈의 달인 6월, 형식적인 추모행사보다 선열들의 숨결을 직접 체험하는 현장학습 코스로 개발하는 것도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