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풀리지 않는 경제난 때문인지, 아니면 어두운 사회 소식 탓인지 사람들의 공연장으로의 발길이 많이 줄었다. 이 때문에 보석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공연이 떡 하니 준비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관심으로 인해 그 공연은 미처 빛을 발산하지도 못한 채 막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지난달 14일에 시작해 오는 9월 12일 막을 내리는 세계 4대 뮤지컬 '미스 사이공'(Miss Saigon)이 그 예다.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미군 병사와 베트남 여인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현대판 '나비부인'(1904)인 이 작품은 뮤지컬 '레미제라블'을 작곡한 클로드 M. 숑베르가 작곡하고 니콜라스 하이트너가 연출했다.
이 작품은 1989년 9월 런던의 드루어리레인극장에서 초연됐으며 캐머룬 매킨토시에 의해 제작돼 1991년 미국에 상륙했다. 그 후 12년 가까이 미국·헝가리·일본·독일 등지에서 절찬리에 공연됐다.
어두운 현실을 반영한 역사를 배경으로 한 미군 병사와 베트남 여인의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재밌게 그린 이 작품은 볼거리가 굉장하다.
전쟁으로 인해 가족을 잃고 떠돌이 신세가 돼 버린 베트남 처녀 '킴'은 너무나도 화려한 '드림랜드'라는 창녀촌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 곳에서 만난 미군 병사 '크리스'와 하룻밤을 보낸 뒤 시작되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아픔은 보는 내내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킴은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슬픔을 내뱉으며 애절함을 노래한다. 헤어진 크리스를 다시 만나리라는 희망 하나로 고통의 세월을 견뎌내고 있는 킴을 보고 있노라면 전쟁을 겪었던 우리나라의 여인들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또한 정신없는 전쟁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은 킴을 잊지 못해 괴로워하는 크리스의 역을 맡은 배우도 그 절절한 심정을 노래와 음성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안타까운 러브스토리에 집중하다가 갑자기 튀어나오는 포주 '엔지니어'의 유쾌 발랄한 원맨쇼는 분위기를 밝게 전환시킨다.
베테랑 뮤지컬 배우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엔지니어는 '아메리카 드림'을 연발하며 재력을 꿈꾼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 엔지니어도 전쟁의 풍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대로 계책을 강구한 인물로 관객들에게 "살아남고 싶다면 나처럼 해"를 외친다.
이 작품은 특히 초대형으로 헬기가 이륙하는 사이공 탈출장면, 베트남전쟁을 상징하는 소총부대, 호찌민 흉상 등이 리얼리즘 뮤지컬의 맛을 보여준다. 또한 끊임없이 이어지는 화려한 춤과 노래, 컴퓨터로 중앙통제가 이뤄지는 무대 장치의 변화에 따른 배우들의 연기가 관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했다.
문의(충무아트홀☎2230-6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