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현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주민이라면 기억하고 있는 이름이 있다. 바로 사회복지사인 문원정(38)씨.
현재 중구청 주민생활지원과 통합조사관리팀에서 근무 중인 문씨는 1997년 당시 '남대문5가 동사무소'에 첫 발령이 났다. 현재 회현동인 그곳에서 문씨는 쪽방촌의 현실을 난생 처음 눈으로 목격했다.
그 많은 쪽방촌 서민들을 돕는데 시와 구의 예산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문씨는 스스로 후원 연계 사업을 추진케 됐다.
"민간단체, 기업체, 재단, 방송국 등 각자의 성격에 맞는 후원을 찾아 연결해주는 일을 했어요. 초보 때와는 달리 경험이 쌓이니까 여러 방법을 찾게 되더라구요."
문씨의 눈으로 본 회현동은 처참했다. 아무 연고 없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일은 기본이고, 700여 개의 쪽방이 거의 다 차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오갈 데 없이 떠도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수많은 회현동 주민들을 보살펴 왔기 때문에 모든 이들을 기억할 수는 없지만 문씨의 기억에 남아있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남대문5가에 첫 발령을 받은 뒤 문씨가 처음 담당하게 된 이영수씨다. 당시 취로반장이기도 했던 이씨는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수술비가 많이 나왔었다. 이때 문씨의 도움으로 공군 자원봉사단체로부터 의료비를 지원받아 무사히 수술을 마쳤다. 이때 의사가 이씨에게 '10년'의 시한부를 선언했다. 그 후 8년, 문씨가 명동에서 근무를 하고 있을 당시 이씨가 찾아왔다. 그는 '의사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 2년이 남았으니 고마운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문씨는 이를 시작으로 보다 적극적인 업무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생신 챙겨드리기 사업'이 있다. 이 사업은 기초수급자의 생신을 챙겨드리는 것으로, 한 명도 빼놓지 않고 1년에 1번은 챙겨드릴 수 있다.
"저소득 주민들을 집단으로 몰아서 살게 하는 것은 좋지 않아요. 재개발 이전에 분산이주대책부터 세워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쪽방촌에 있던 사람이 노숙을 하게 되고 결국 술 마시고 결핵에 걸려 사망하는 일이 점점 더 늘어날 거예요."
대전에서 양로원을 운영하시는 부모님의 권유로 사회복지학을 전공하게 된 문씨는 학창시절 갱생보호협회에서 소년원 아이들의 학습을 지도하기도 했다.
"주로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것을 도와줬어요. 소년원 아이들이 거칠고 말 안들을 것 같지만, 검정고시 등 목표를 갖고 있는 아이들은 누구보다 진지했어요."
현재 남편 양진영(42)씨와 우창(14) 희창(11) 두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 문씨는 회현동을 포함한 중구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주민들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펼칠 꿈을 갖고 있다.
"행색이 초라한 사람들이라도 무서움이나 거부감을 버리고 인간적으로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하면 결국엔 다 똑같은 인간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그게 제 일의 보람이기도 하죠."
※ 중구민들이 모두 칭찬받는 그날까지 중구자치신문의 칭찬릴레이는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