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미년 3월1일 정오, 대한민국 독립만세 소리가 3천리 방방곡곡에 울려 퍼진지 90년이 됐다. 고종의 장례일인 이날 서울을 비롯해 평양, 진남포, 안주, 의주, 선천, 원산 등지에서 동시에 독립선언식이 이루어짐으로써, 전국적인 민족해방 운동으로 전개됐다.
원래 33인과 함께 학생들은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군중은 독립만세의 함성을 외치며 시위에 들어갔다고 한다. 이 독립선언은 대중의 반일감정이 자연발생적으로 폭발하는 만세시위운동으로 확산된 것이다.
이와함께 국내ㆍ외에서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이 무수히 많다. 이들중에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사람도 있지만 알려지지 않고 묻혀진 독립투사도 많음을 우리는 상기해야 한다. 비록 분단된 국가지만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가 대한민국 땅에서 우리의 언어를 쓰고, 민족의 자존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희생을 각오하고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한 숭고한 애국지사들을 위해 우리는 3월달 만이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이어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글로벌 금융위기등으로 국가경제가 소용돌이 치고, 실업자가 늘어나고 있지만 나라와 재산을 잃고 인권이 유린당하던 일제치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자유로움과 행복이 있음을 감사해야 한다.
얼마전 공중파 방송에서는 신간회 간부였던 이희영씨와 그의 가족들에 대한 안타까운 독립투쟁 얘기가 방송됐다. 그는 거부였지만 재산을 모두 팔아 중국 만주로 건너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고 교육하는데 모두 썼다고 한다. 이는 1911년부터 1920년까지 중국 만주 서간도에서 벌였던 독립운동사의 대표적 독립군 양성기관으로 민족의 자존을 지키는데 기여해 왔으며, 민족해방운동을 전개하는 전진기지로 활용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리고 국내외 모든 독립운동가들이 이들의 집을 거처가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희영과 형제, 가족들은 말년에 하루세끼 식사를 하기 어려울 정도로 궁핍한 생활을 했으며, 형제들을 대부분 굶어서 죽었거나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고 전했다.
이 독립투사처럼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너무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바쳐 싸웠던 선열들이 아직도 많다. 이들을 방치하지 말고 발굴해서 선조들이 흘린 피와 땀을 보상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몸바친 사람들을 국가가 찾아서 보상하고 생활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중구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봉사활동을 해왔던 김성식씨는 부친이 김구 선생과 함께 동고동락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는데도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아직도 독립운동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방치한다면 국가가 누란의 위기에 처할 때 누가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고 희생하겠는가.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한 대가는 반드시 정부에서 책임진다는 믿음을 줄 수 있도록 대책마련이 절실히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