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 명절 앞둔 재래시장은 지금 ② / 서울중앙시장

역사ㆍ전통 간직한 대표 재래시장 ‘정평’

다양한 상품ㆍ저렴함 가격 ‘안성맞춤’

상인 노하우ㆍ산지 직송으로 ‘최상품’

대형유통점ㆍ재개발 주민 이주 ‘한숨’

 

 재래시장은 향수(鄕愁)의 또 다른 이름이다. 마음속에 저마다 고이 간직한 고향의 따뜻함이 전통시장 속에 오롯이 담겨 있다. 각박한 세상살이에 지쳤을 때 고향을 그리워하듯, 재래시장은 힘든 마음에 위로와 용기를 주는 힘을 지니고 있다. 서울중앙시장은 유서 깊은 역사를 간직한 대표적 전통시장이다. 급속한 변화의 세월을 견뎌낸 서민들의 추억이 담긴 장소이며, 젊은 세대에게는, 경험해 보지 못한 시골고향의 푸근함을 제공하는, 기억의 공간이다. 2월이다. 곧 설 명절이다. 서울중앙시장을 거닐었다. 미곡 닭ㆍ돼지부산물 해산물 청과 등 먹거리를 비롯해 의류 가구 포목 등에 이르기까지, 각종 상품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었다. 정적인 시장의 모습은 가슴 한 부분을 데워줬고, 열심히 일하는 동적인 부산함은 곧 찾아올 고향의 봄을 예비하고 있었다.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출구에서 나와 횡단보도에 섰다. ‘서울중앙시장’ 간판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 앞에는 신호에 걸렸음에도 꼬리를 문 자동차의 행렬과 오토바이 그리고 사람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불규칙한 하나의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그 속을 헤집고 들어가 중앙시장의 품에 안겼다. 274m의 직선이 펼쳐졌다. 신당동 방향 정문에서 마장로와 이어지는 후문까지 거리는 274m에 불과했지만, 중앙통로와 이어지는 16개의 날개통로는 중앙시장의 범위를 계속 확장시키고 있었다.

 

 “어디까지가 중앙시장이죠?”

 “황학동 전체가 시장이에요.”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을 마음 좋게 생긴 아주머니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이리저리 걷다가 5번 통로와 연결되는 운영회 사무실을 방문했다. 사단법인 서울중앙시장운영회의 박정원 회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박 회장은 지난 1일 취임식을 갖고, 2년 임기를 막 시작했다. 취임 전까지는 수석부회장 직을 맡았으며, 40년 세월을 중앙시장과 함께해 온 역사의 산증인이다. 먼저 방금 전 들었던 사실을 확인했다.

 

 “황학동 전체에 걸쳐서 상가가 형성돼 있어요. 예전에는 남대문ㆍ동대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서울의 대표적 재래시장이었습니다.”

 

 박 회장은 “황학동 중앙시장에 가면 없는 게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면서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알맞은 가격에 원스톱 쇼핑할 수 있으며 상품의 우수성과 신뢰도는 각 점포마다 확보하고 있는 단골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시민의 식탁에 오르는 양곡의 대부분이 이곳 중앙시장에서 판매되던 시절도 있었던 것으로 회자되고 있다. 중앙시장은 1950년 즈음 발생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1962년 11월2일 개설 등록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앙통로를 중심으로 현재 형성된 시장의 형태를 보면, 좌우 양 측면 건물에 점포가 들어있고 그 앞에 인도와 간격을 두고 노점이 위치해 있다. 중앙통로를 사이에 두고 노점들이 마주 보고 있는 형상이다. 신당지하상가 공사가 완료되면서 70년대 초부터 이같은 형태를 현재까지 이루고 있다. 박 회장은 “노점과 노점이 떨어져 현재 마주 보고 있지만, 신당지하상가가 생기기 전에는 반대로 노점끼리 붙어서 상가에 든 점포와 노점이 마주 보고 있는 형태였다”고 회고했다. 70년대부터 80년대를 거쳐 90년대까지 중앙시장은 호황을 누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박 회장은 “잘 될 때에 비해 점포와 노점이 200개 이상 줄어들었다”면서 “현재는 상가 점포와 그 앞 노점을 함께 운영하는 상인이 많다”고 현황을 짚어줬다. 이에 따라 중앙통로 양 옆의 노점은 소매 고객을 대상으로 하고 그 뒤에 위치한 가게에서는 도매를 주로 하는 방식으로 상당수 운영되고 있다. 노점들이 현재 서로 경쟁적으로 상품을 앞쪽으로 진열함으로써 중앙통로가 좁아진 문제도 있는 상태다.

 

 박 회장은 “고객들이 이동불편을 겪고 질서가 문란해져, 결국 시장이미지가 하락하면 중앙시장 전체의 손해”라면서 “먼저 질서부터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중앙시장 활성화를 위한 계획들을 차곡차곡 시행할 것”이라고 의지를 나타냈다.

 

 지난해 인근에 대형유통점이 생긴 이후 휴일제가 잠정적으로 폐지된 상태다. 휴일 없이 일함으로써 상인 자신들은 오히려 더욱 힘들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매월 둘째 넷째 일요일에 쉬던 휴일제를 지켜야 한다는 데 대부분 의견이 일치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은 “휴일제를 부활하고 여러 지역의 도시와 직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힌 후 “여러 재래시장의 우수사례를 벤치마킹하기 위한 견학 등을 구상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중앙시장도 지난 2004년 현대화사업을 통해 환경개선을 어느 정도 이뤘다. 비가리개 시설을 하고 간판을 정비하는 등 공사 전보다는 환경이 확실히 좋아지기는 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이러한 사업이 중앙시장의 매출신장에 어느 정도 직접적으로 도움이 됐는지는 누구도 자신 있게 이야기하지 못한다.

 

 박 회장은 “겉모양뿐만이 아니라 사람 자체가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설도 물론 중요하죠. 하지만 정말 중요한 건 상인의 태도와 마인드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맞춘 상품 개발과 마케팅 전략을 모색하고 급변하는 세상에 보조를 맞추면서 앞서나가려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40년 세월을 중앙시장에서 보낸 박정원 회장. 그가 생각하는 재래시장의 미래가 문득 궁금해졌다.

 

 “재래시장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어요. 예전 호황기의 기억은 절대로 잊을 수 없을 거예요. 그 시절만큼은 아닐지 모르지만 재래시장의 시대는 다시 올 것입니다.”

 

 사무실을 나와 이리저리 거닐다 3번 날개통로 안쪽의 빼곡한 점포들이 눈에 들어왔다. 닭부산물과 해산물을 판매하는 많은 가게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상인들은 하나같이 분주한 모습이었고, 점포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어항 속 물에 반사되며 예쁜 그림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문어와 조개의 호흡이 느껴질 정도로 가게들은 생동감 있게 성업 중이었다. 중앙시장에서 30여년 해산물을 판매해 온 최민오씨는 “냉동해 파는 것도 있고, 살아 있는 해산물은 가게마다 어항에 담아 관리를 잘 하는 것 같다”면서 “바지락을 비롯해 중앙시장 해산물의 신선도는 최고”라고 자부했다.

 

 이곳에서 만난 상인들은 하나같이 몇 십 년 세월을 중앙시장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분들이었다. 50년 정도 세월 동안 대를 이어 고춧가루와 마늘을 판매하고 있는 신윤종씨는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아 가업을 잇고 있는 모범사례다. 중앙시장의 큰 시련 가운데 하나가 인근 대형유통점의 존재다. 하지만 신씨의 경우에는 충분히 경쟁력이 있어 보였다. 대형유통점에 비해 가격이 최대 40%까지 저렴할 정도였다. 유통기한이 있는 포장제품을 판매하는 대형유통점과 다르게 직접 고추를 빻아 신선하고 믿을 수 있다. 신씨는 “아버님은 제분 분야에 있어서는 거의 도사”라고 표현했다. 중앙시장에는 현재 50개 정도의 고춧가루 판매점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는데, 대부분 숙련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육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근래 대형유통점끼리 삼겹살 경쟁이 붙어 우리는 특히 더 장사가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한숨지었다. 30여년 정육점을 운영해 온 안영석씨는 “중앙시장 정육점의 경우 대체적으로 오랫동안 하신 분들이 많아서 고기를 선별해 내는 안목이 남달라 좋은 제품을 판매한다”고 말했고, 25년 정도 육류를 판매해 온 김태복씨는 “산지직송 제품이기 때문에 중간단계를 거치는 대형유통점 등의 육류보다 품질이 좋고 가격도 더 저렴하다”고 밝혔다.

 

 중앙시장 상품은 전통을 바탕으로 한 노하우와 산지직송이라는 점에 있어서 뚜렷한 강점을 지닌 듯했다. 20년 정도 미곡을 판매해 온 유병윤씨는 “예전부터 중앙시장은 양곡으로 정평이 났으며 산지직송 좋은 제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고 전했다. 현재 중앙시장의 미곡 점포는 30~40개 정도로 집계됐는데, 예전보다 절반 정도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도매와 소매를 겸하지만 도매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다.

 

 걷고 보고 말하고 듣고 쓰고 걷다 보니 어느 틈에 허기가 엄습했다. 1번 날개통로의 보리밥이 생각났다. 중앙시장의 보리밥 골목은 20년쯤 전부터 형성돼 중앙시장의 명물로 조용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갖가지 나물과 함께 양배추 다시마 배추 상추 등이 곁들여 나오는 특징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쌈을 싸거나 한데 버무리면 맛깔스러운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보리밥집들과 함께 옷가게들이 이어져 있는 장소에 가래떡을 올려놓은 노점이 눈길을 끌었다. 상인 아주머니는 “주문이 들어와 준비해 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30년 정도 중앙시장에서 장사했다는 그 아주머니는 “설 특수는커녕 몇 년 전부터 왕십리 뉴타운과 신당동 재개발로 사람들이 빠져나가 경기가 너무 안 좋다”고 알려줬다.

 

 하릴없이 중앙통로를 타박타박 걷고 있는데, 재잘거리는 소리가 어깨를 타고 귓속으로 들어왔다. “엄마, 구경하니까 좋다!” 인근 롯데캐슬에 살고 있는 이 주부는 초등학생 아이들을 데리고 반찬거리를 구입하려던 차였다. “가격도 저렴하고, 아이들도 시장을 좋아해요. 애들이 시골을 가본 적이 없는데, 여기 오면 시골집 온 것 같다고 즐거워해요.”

 

 이 아이들에게 훗날 중앙시장은 향수의 대상이 될 것이다. 아이들의 해말간 표정 속에 재래시장의 미래가 서려 있었다.

 

◇서울중앙시장 정문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