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시리즈> 종교와 지역사회(20) /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사회정의ㆍ인권회복의 산실

말씀과 성사통해 구원 은총 나눠

영세민지원 등 공동체 신앙 실천

 

 본지에서는 지역주민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관내 각종 종교단체를 찾아 '종교와 지역사회'라는 테마로 종교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과 역할에 대해 집중 조명한다.

 

 중구 정동에 소재하고 있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 성당(주임신부 홍영선)는 1890년12월21일 첫미사를 드린 ‘장림성당’을 모체로 이 대성당이 창립됐으며 성모 마리아와 성 니콜라 성당으로 이름지어진 대한성공회의 어머니 교회로 113년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일제 암흑기에는 실의와 좌절에 빠진 민족에게 굴하지 않는 용기와 신앙적 결단을 보여주었고 한국 전쟁중에는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피를 흘리기도 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반민주 정권의 한 복판에서 사회정의와 인권회복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면서 1987년6월10일에는 ‘군부독재 타도와 민주쟁취를 위한 범 국민대회’가 개최돼 이 땅 민주화의 산실이 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가 진보와 보수의 신앙적 갈등속에서 대립할 때에도 서울대성당은 양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적 신앙과 포용성의 신앙을 견지하며 모범적인 교회모습을 지켜왔다.

 

 이는 초대교회로부터 내려오는 오랜 역사를 지닌 교회로서 16세기 종교개혁의 과정을 거치면서 카톨릭이면서 개혁적인 교회로 발전해 왔으며 모든 신앙의 기초를 성서에 두고 신앙전통을 존중하고 구교와 신교를 포용하는 중용과 일치를 도모하면서 토착적이고 민족적인 신앙에 근거하기 때문이다.

 

 1968년부터 한국기독교연합회 일원으로 참여, 교파간의 벽을 넘는 교회일치운동(Ecumenical Movement)에 앞장서 왔으며 균형잡힌 예전과 교회음악, 활발한 사회선교 사업을 통해 21세기 새로운 예배와 다양한 선교의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이 성공회의 특징은 천주교 미사 형태를 띠면서도 개신교 풍을 가미하고 있는 또 하나의 종파로 천주교 개신교와는 달리 영국의 국교로 전 세계에 1억명의 신자수를 자랑하고 있다.

 

 1890년9월29일 인천에 들어오면서 인천과 서울에서 선교가 시작됐지만 한국에서 크게 부흥하지 못한 가운데서도 서울에 20여개, 전국적으로는 200여개의 교회가 있으며 5만여명의 신도들이 활동하고 있다. 서울주교좌 성당에는 3천여명이 등록돼 있지만 주말에는 1천여명이 미사를 드리고 있다.

 

 홍영선(베드로) 주임신부(50)는 연세대 신학대학, 성공회 성 미카엘 신학원을 졸업하고 1982년 사제서품을 받은 뒤 서울교구 교무국장등을 역임한 뒤 2000년8월 부임해 왔다.

 

 그는 교회 표어를 "밭을 갈아 선한 열매를 거두어라"에 두고 신앙적 전통과 영성적 특성을 지키며 말씀과 성사를 통해 구원의 은총을 나누는 공동체, 편중된 신앙이 아니라 이성과 관용을 통해 조화로운 영적 성숙과 성장을 이루는 공동체, 사회봉사를 통한 섬김과 나눔의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홍신부는 "매일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고 성체성사의 신비와 사랑의 나눔이 있는 대성당"이라며 "교회 예산의 3분의 1을 사회봉사와 선교지원금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따라서 "우리 주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노숙자와 장애인 시설, 보육원 소년소녀가장, 무의탁 노인들을 돕고 있으며 학비가 없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미자립 교회 및 선교기관, 사회복지기관을 지원하고 있는등 공동체 신앙을 실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회가 선교사업을 실질적으로 시작한 것은 1891년 부활주일이었으며 본격적인 성당을 세울 계획을 갖게 된 것은 1914년의 일이다.

 

 서울주교좌 성당은 제3대 조마가(Mark Napier Trollope) 주교의 10여년에 걸친 구상과 모금 끝에 1922년9월24일 착공, 1926년5월2일에 원 설계의 일부만을 완성하고 축성됐다. 조마가 주교가 서울대 성당 건축양식으로 선택한 것은 로마네스크(Romanesque) 양식이었다. 고딕양식 보다는 이 양식이 한국의 풍토와 전통에 더 적합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설계자는 영국왕립건축학회(RIBA) 회원인 딕슨(C.S Dixon)이며 감독은 영국 청년 건축가 '브룩크'였다.

 

 그 이후 미완의 성전으로 남아 있다가 1996년5월2일 원 모습을 복원 할 수 있었다.

 

 교회위원회는 교회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1991년 선교 100주년 기념사업과 교회 2세기 선교과제 수행을 위한 신앙적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물론 표면적으로 그 이유가 미사공간과 교육공간의 부족, 친교공간의 부족이라는 점도 있지만 더욱 큰 이유는 대한성공회 어머니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한 취지였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수도 한 가운데 위치한 서울대성당이 사회 문화 역사속에서 교회의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성당완성과 부족건물 신축의 과제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다.

 

 이 성당은 1988년 서울올림픽 당시 세계 건축가들이 선정한 건축물 중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찬사를 받은 이 성당은 동양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서 한국 전통 건축기법을 가미한 동서양의 조화였다. 주변 환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이 성당은 처마 끝부분 처리와 화강암 축조 그리고 창살문양을 도입했으며 지붕은 한식기와를 사용했다.

 

 서울주교좌 성당의 또 하나의 자랑거리는 대성당 모자이크 제제단이며 국내최초의 영국제 파이프오르간이다. 또 성당 뜰에는 한국전쟁중에 순교한 이원창 윤달용 조용호 이도암 홍갈로 신부와 마리아 클라라 수녀추모비와 6월 민주항쟁 진원지라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귀중한 문화유산인 이 성당은 1978년 서울시 지방문화재 제35호로 지정돼 있다.

 

 

 

◇중구 정동에 소재하고 있는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전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