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환경변화에 따라 의료시장 개방, 민간보험 도입, 노인요양보험제도 도입, 건강보험재정 기금화, 건강보험법 개정의 필요성 등 5대 국민건강보장 주요정책들이 제시되고 있다. 본지에서는 국내 보건의료환경 향상을 위해 제시되고 있는 5대 정책과제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인천 등 경제자유구역 특구내 외국병원 설립과 외국병원의 내국인 진료를 허용하고, 특구내 내ㆍ외국인에 대한 영리법인 허용 등을 포함한 자유경제구역 관련법률이 지난해 말 국회를 통과했다. 이에 따라 생명보험사, 민간기업, 병원협회 등으로부터 국내 의료서비스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하에 민간보험 도입 등을 관철시키려는 주장이 또다시 제기되고 있다.
2001년 건강보험 재정파탄에 따른 재정안정 대책 일환으로 정부가 공적 보험의 재정부담을 줄이고자 민간보험도입을 적극 검토하였으나, 시민단체 등의 반대에 부딪혀 한동안 잠잠하다가 또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도입주장의 논리는 의료서비스의 다양화, 고급화로 국민들의 의료욕구를 충족시키고, 부유층의 해외진료를 줄인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지만, 과연 민간보험 도입이 공적보험의 취약점을 적절히 보완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오히려 사회보장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새로운 문제를 유발할 가능성이 매우 짙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먼저 공보험인 건강보험과 민간보험의 차이점을 살펴보면, 공보험은 국민의 기본적인 건강문제를 사회가 공동으로 해야 한다는 원리이다. 하지만 민간보험은 개인의 건강은 개인의 책임이며 개인이 해결해야 한다는 원리에 따르고 있다. 또 건강보험은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하는데 반해 민간보험은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 존재한다. 따라서 건강보험에서는 소득수준에 따라 부자는 높은 보험료를, 가난한 자는 낮은 보험료를 납부하면서도 보험급여는 차별 없이 동등하게 받는 반면, 민간보험에서는 납부하는 보험료의 크기에 따라 천차만별의 혜택을 받는다.
민간보험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면, 누구나 최상의 서비스를 받기를 원할 것이다. 민간보험사는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여 돈 많고, 건강한 가입자만을 선택적으로 가입시킬 것이다. 또 민간보험의 관리운영비, 광고비 등을 보험비용으로 전가하여 민간보험료는 오르고, 경제능력이 부족한 저소득층은 가입에서 소외되어 의료서비스의 불평등이 심화될 것이다.
의료공급의 경쟁력 있는 일부 대형병원은 민간보험과 사적계약을 맺어 많은 수익을 올릴수 있지만, 대다수 일반병원들은 장애인, 만성질환자 등 민간보험 가입능력이 없는 저소득층의 진료를 떠맡아 의료공급자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부유하고 건강한 부유층은 공적보험에서 이탈하여 민간보험에 가입하고, 가난하고 병약한 저소득층은 공적보험에 남아 보험재정을 악화시킬 것이다. 보험재정 악화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약화로 이어지고 결국 건강보험은 최저 수준의 의료보장으로 위축될 것이다. 차량보험에 빗대어 말하면, 건강보험은 책임보험이고 민간보험은 종합보험이 되는 것이다.
민간보험이 의료보장을 주도하는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부담능력에 따라 똑같은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라 돈 많고 건강한 사람은 저렴한 보험료를 내고, 돈 없고 병 든 사람은 비싼 보험료를 내는 민간보험에 가입한다고 한다. 중산층 국민 4인 가족 기준으로 연간 약 1천200만원의 보험료를 부담한다. 이 엄청난 보험료 부담 때문에 국민의 15% 정도는 의료보장에서 제외되어 있고, 건강지표는 OECD 선진국 중 최하위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대통령 선거 때마다 의료보험제도가 주요 쟁점으로 등장한다.
제도 도입에 앞서 먼저 시행하고 있는 국가의 제도를 살펴보고,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
현재도 우리 나라의 건강보험 보장율은 60% 미만으로 OECD 국가 중 멕시코를 제외하고 최저 수준이다. 정부에서는 상급병실료, 선택진료비, 식대, 본인부담상한제 및 암 등 중증질환의 보험급여 확대로 2008년도까지 건강보험의 보장율을 70%이상 끌어올릴 방침이지만, 건강보험의 재정안정화가 전제가 되어야 가능한 것이다. 의료인들이 의료허브라고 부러워하는 싱가포르나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공공의료비율이 80%가 넘기때문에 큰 비판 없이 영리법인화가 가능한 것이다.
무한경쟁과 시장경제원리가 현재의 추세임을 감안하면, 민간보험의 도입은 피할 수 없다할지라도 섣부른 민간보험의 도입보다는 민간보험이 실질적으로 그 효용을 발휘할 수 있도록 문제점을 최소화하고 보완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험료 인상과 국고지원 확대로 공적보험의 조속한 재정안정과 보장성 강화, 공공의료기관의 대폭 확충 등이 우선적으로 선행되어야 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만 민간보험의 도입과 활성화를 통하여 보완적 경쟁체제가 가능할 것이다.
<자료제공-국민건강보험공단 중구동부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