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 극복하고 중림동 '봄날의 햇살'로 부상

■ 이 사람 / 한면우 중림만리새마을금고 전 이사장
퇴직·축의금 모아 6천500만원 장학기금 기부
장의사하며, 6천여명 넘는 사람들에 무료봉사
10년동안 암투병 아내를 직접 간호한 순애보

 

서울 중구의 한 전직 새마을금고 이사장이 12년간 근무한 퇴직금 등을 장학기금으로 내놓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화제를 모으고 있다.


그 주인공은 중림동 중림만리새마을금고 한면우(79) 전 이사장이다.


지난 2008년부터 2020년까지 중림만리새마을금고의 이사장을 지낸 그는 2020년 2월, 12년 임기를 마치며 받은 퇴직금과 칠순때 들어온 축의금 등 6천500만원을 ‘중림만리새마을금고 장학회’(이하 마을금고 장학회) 장학기금으로 기부했다.


“월세 사는 형편이었음에도 나를 마을금고 이사장으로 뽑아준 회원들에게 항상 고마움을 느꼈죠. 그래서 그분들처럼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을 돕고 싶어 장학기금에 기부한 것이에요”


지금은 천지개벽이라 할 정도로 동네가 많이 좋아졌지만 불과 10년전만 해도 서울 도심의 대표적 달동네였던 중림동에서 마을금고 장학회는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학비를 마련할 수 있는 가느다란 희망이었다.


“이사장으로 와보니 마을금고 차원의 장학회가 있었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금액이 너무 적은 거예요. 더 많은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데 아쉬움이 있었죠”


그래서 그는 12년간 ‘봄날의 햇살’ 같은 꿈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나에게 계속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주민들에게 보답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12년간 근무하며 받게 될 퇴직금을 장학기금으로 기부하겠다는 꿈을 갖게 됐습니다”


한 전 이사장의 기부로 마을금고 장학회는 기존 기금과 함께 든든한 실탄을 구비했고, 지난 해 총회 때 어려운 가정의 고등학생 3명에게 50만원씩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올해도 생활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선발해 장학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44년생인 그는 안양에서 위로 누나만 9명인 가난한 집안의 9녀3남중 11번째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 산동네인 중구 만리동으로 이사왔다. 이후 계속 중림동에서 살아 70년 이상 된 중구 토박이이기도 하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갔지만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 때라 1학년을 마친 후 군에 입대해 월남에 파병을 가는 등 6년 동안 하사관으로 복무했다.


제대 후 그는 중림동에서 장의사를 차렸다. 그리고 아침마다 교차로에서 교통안전 도우미를 하고, 새마을지도자가 되어 매일 동네 곳곳을 청소하는 등 묵묵히 봉사활동을 이어갔다.


어렵게 사는 주민들을 위해 25년간 무려 6천회 넘게 무료로 염을 해주기 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그를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이 바뀌었다. 그리고 주민들의 추천으로 98년 제3대 중구의회 구의원 선거에 나서 여유 있는 표차로 당선됐었다. 부지런함이 몸에 밴 그는 활발한 의정활동으로 2002년 구의원에 재선됐다.


2008년에는 생각지도 않게 주변 사람들의 권유로 중림만리새마을금고 제4대 이사장 선거에 나섰다. 아직도 월세로 사는 신세였지만 그에게는 특유의 성실함과 친화력이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지역 유지였던 경쟁자를 46대41, 5표 차이로 물리치고 이사장에 선출됐다.


주택재개발, 서울로7017 건립 등으로 동네가 새롭게 탈바꿈하는 시기에 다수의 주민들을 마을금고 회원으로 이끌고 우대금리 등 적극적인 정책으로 마을금고 수신액을 높이자 회원들의 높은 지지를 받아 2020년까지 12년간 금고 이사장으로 세 번이나 연임했다.


한편 그는 암에 걸린 아내를 10년 넘게 본인이 직접 간호한 순애보로도 유명하다.


가난을 극복하고 아들, 딸 낳아 행복하게 살았지만 2004년 아내가 암에 걸려 10년 동안 투병생활을 했다. 이때 그는 간병인을 쓰지 않고 본인이 직접 아내를 간호했다. 이런 그의 지극정성으로 아내는 10년을 더 살 수 있었다.<이형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