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이란 세월동안 주민들에게 외국어를 무료로가르쳐온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약수동 김창구(70) 선생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강의가 일시적으로 중단된 상태지만 김 선생은 부천시 심곡3동 주민센터에서 20년간 영어, 중국어, 일본어, 한문을 무료로 가르쳐 왔다.
당시 지방신문은 물론 조선일보(2008‧2009년)에 2회에 걸쳐‘무료봉사하는 동네 한자선생 김창구씨’라는 주제로 소개했다.
자녀들이 서울에 자리를 잡으면서 서울중구 약수동으로 이사를 온 그는 중구청소년센터에서 무료로 외국어를 강의한지도 10년째라고 한다.
그가 외국어봉사를 하게 된 동기는 선친이 일본 강점기 시대에 공부를 못한 서러움이 있어서 못 배운 사람들에게 아는 것을 가르쳐주라는 선친의 유훈이 첫 번째이며, 두 번째는 1990년 부천시 거주당시, 집 앞 포장마차에서 약주를 하던 낯선 두분의 대화에서 “야! 우리 사장은 무식해 명함에 적힌 쉬운 한자도 못 읽어, 저런 사람이 직원들을 어떻게 통솔 해”, 그 대화를 듣고 이 사회는 아직도 한자가 필요한 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것을 느낀 후 필요한 사람에게 한자를 가르치게 됐다고 한다.
그 당시는 주민자치센터가 설립되지 않아 지금처럼 주민자치센터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없어서 회의실에 긴 식탁의자를 놓고 강의했다.
당시 수강생들이 처음 강의에 와서 질문하는 말이 “어떻게 혼자서 4개 외국어를 가르칠 수 있느냐 였다”고 한다.
영어는 수년간 미8군 카투사 파견대장(예비역 육군 소령)으로 영어통역관을 한 산물이고, 한문은 선친의 고집으로 시골서당에서 2년간 한문만 공부하면서 명심보감을 비롯해 논어까지 학습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일본어가 인기였으며 중국과는 미수교국으로 우리나라는 대만과 외교관계를 유지한 상태였다고 한다.
일본어와 중국어는 비싼 학원비를 지불하면서 서울역 근처 관광통역학원에서 공부 한 뒤 학원 강사를 비롯해 수많은 초‧중‧고생들의 과외교사를 하기도 했다.
2015년부터 2020년 8월 현재까지 서울시의회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30대 후반에 시작한 봉사활동이 벌써 70대가 됐다. 그 동안 수천 명의 성인제자들을 배출했다.
그 당시 공부에 열중했던 수강생들은 지금도 단체 카톡방에서 공부를 하면서 스승과 제자간의 아름다운 인연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부천시에서 수업할 때는 1년간 수업 후 수료식을 가지면서 동장 명의로 수료증을 수여하기도 했다.
김창구 선생은 “지금 부천시의원으로 있는 김병전 의원은 13년 전 심곡3동 동장을 지냈으며, 부천시 3선 국회의원으로 있는 김경협 국회의원은 처음 국회입성하면서 한마음어머니교실수업을 많이 도와줬다”며 “지금도 두 분 모두 페이스북 친구로서 부천시와 국가의 발전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 자랑스럽다. 부천시에서 20년간 수료식을 하면서 많은 도움을 준 동장들과 지역단체장, 수료생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고 밝혔다.
“중구청소년센터에서 강의하면서 성인외국어 노래봉사동아리를 만들어 영어, 중국어, 일본어 노래를 각국 전통의상을 입고 불렀을 때 관중들로부터 열렬한 환호와 박수갈채를 받았다. 특히 많은 공연 중에서 2015년 12월 5일 서울시SH공사에서 주최한 각 구별 노래합창대회가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는 그는 “참봉사란 마음을 비우는 것”이라고 밝혀 삶과 참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이형연 대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