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람 /서울명장 1호 김인호 ㈜동양상사지기인쇄 대표이사

서울 인쇄 반세기 한 길, ‘인쇄역사’를 기록하고 보존하는 김인호 인쇄 명장
50년 넘게 인쇄 기술에 매진한 숙련공, 2025 인쇄분야 ‘서울 명장’ 1호 선정
한글 홀로그램·제책기능사 제도 도입 등 기술 발전과 제도 개선을 이끈 주역
품질을 최우선 가치로 여기며 의약·화장품 패키징 분야에서 장인정신을 실천
“인쇄 기술은 반드시 남겨야 할 역사”… 마지막 바람은 ‘인쇄역사박물관 설립’

 

“인쇄인으로서의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인쇄역사박물관’을 만드는 일”이라는 말하는 인쇄분야 서울명장 1호 김인호 ㈜동양상사지기인쇄 대표이사(76).


그는 2025년 12월 22일 서울시 인쇄, 의류봉제, 주얼리, 기계금속, 수제화 등 5개 분야의 최고 숙련기술인 5명으로 선정, 인쇄분야 제1호 ‘서울 명장’이라는 영예를 안았다.

 

이는 기술력은 물론 지역사회 기여도까지 종합해 ‘기술로 사회에 기여한 장인’에게만 주어지는 ‘명장’으로 ‘서울명장’ 인증패와 현판이 수여되고 기술장려금 1천만원이 지급됐다.


이들에게는 후배들에게 보유기술을 전수할 수 있도록 도시제조업 관련 기술교육원과 특성화고의 특강을 비롯해 멘토링, 작품전시 등 다양한 기술 전수활동을 지원한다.


김 명장은 “장인정신과 성실함으로 살아온 시간을 인정받은 것 같아 영광스럽다”며 “기술의 가치는 여전히 사람의 손과 정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후배들게 알리고 싶다”고 밝혔다.


김 대표이사가 걸어온 길은 서울시가 말하는 ‘명장’의 정의와 놀라울 만큼 닮아 있다.


1970년 제책회사[대동제책사(주)] 입사하며 인쇄업계에 첫발 이후 반세기 넘게 인쇄 기술에 매진한 숙련 기술인이기 때문이다. 특히 의약품·화장품 포장 상자인 ‘폴딩카톤’ 분야에서 전문성을 쌓아왔으며 한글 홀로그램 도입 등 선제 기술 솔루션을 통해 고품질 패키징 기술을 선도해 왔다.

 


입사 당시에는 제책을 제대로 배울 교재도, 체계적인 교육 과정도 없던 시절이었다. 인쇄 관련 서적 자체가 귀했고 제책은 교과서의 일부로만 간략히 다뤄졌다.
그는 일본에서 제책 기술서를 어렵게 구해왔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어를 배웠던 원로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한 문장, 한 문장 번역을 부탁했다. 낮에는 현장에서 몸으로 배우고 밤에는 책상 앞에 앉아 기술서를 파고드는 시간이 반복됐다.


그렇게 쌓인 시간이 어느덧 50년을 훌쩍 넘었다. 1978년, 국정교과서(주)에 공채로 입사하며 그의 인쇄 인생은 또 다른 국면을 맞는다. 그는 인쇄 후가공 기장으로 일했다. 당시 인쇄 분야에는 기능사 자격증 제도가 있었지만 제책 분야에는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없었다.


같은 현장에서 같은 강도의 일을 해도 제책 종사자들은 기술수당조차 받을 수 없었다.


김 대표는 문제의식을 느꼈다. 그리고 직접 움직였다. 제책기능사 자격증 제도 도입을 제안했고 시험 문제 출제부터 교육, 평가까지 모든 과정을 도맡았다.


일본 기술서를 토대로 문제를 만들고 경찰서에 문제 유출 방지 각서까지 제출하며 제도를 하나하나 구축해 나갔다. 그 과정에서 만들어진 자료들은 지금도 그가 소중히 보관하고 있다. 일부 자료는 서울역사박물관에 기증됐다.


“인쇄 기술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아야 합니다.” 김 대표이사가 인쇄 역사를 대하는 태도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


1993년 1월,그는 ㈜동양상사지기인쇄를 설립했다. 의약품과 화장품 패키징 전문업체로 회사를 키워왔다. 회사를 운영하며 그가 가장 중요하게 지켜온 원칙은 단연 ‘품질’이었다.


지금도 그는 투컬러 오프셋 인쇄기로 작업한다. 다색기를 사용하면 속도는 빨라지지만 그가 원하는 색의 밀도와 균일함을 완벽하게 구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같은 색을 여러 번 반복해 찍는 방식. 시간은 더 걸리지만 결과물의 완성도는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제약 패키징은 단순한 포장이 아니다. 사람의 건강과 직결된 인쇄다. 그래서 타협은 있을 수 없다. 생산성은 솔직히 떨어진다. 다른 업체라면 몇 시간 만에 끝낼 작업을 하루 이상 붙잡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자동화 공정이 많은 제약 패키징에서 인쇄 품질이 조금만 흔들려도 전량 폐기로 이어진다. 그래서 그는 종이 선정부터 후가공까지 모든 공정을 직접 관리한다.


값싼 종이는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일본에 가면 약이나 화장품을 일부러 사 온다. 제품이 아니라 종이를 보기 위해서다. 종이의 두께와 밀도, 규격은 패키징 품질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딱 하나, 품질입니다.”


품질을 지키기 위해 단가는 올라간다. 하지만 그는 가격보다 결과를 본다. 외주를 줄 때도 자신의 단가를 그대로 지불한다. 대신 감리는 철저하다.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다시는 일을 맡기지 않는다. 반대로 신뢰할 수 있는 협력업체와는 수십 년간 거래를 이어왔다. 한 번도 거래처를 바꾸지 않은 곳도 있다.


“일은 기술이고 기술은 신뢰입니다.” 2011년에는 골다공증 치료제를 위한 복약 편의성 중심의 패키지를 개발했다. 환자가 복용 주기를 헷갈리지 않도록 구조적으로 해결한 방식이었다.


이 기술로 블리스터 팩 케이스 및 포장 방법 특허를 취득했다. 국정교과서 시절부터 지금까지, 그는 우리나라 인쇄 역사의 산증인이다.


낡은 종이처럼 보이는 자료들 속에 산업의 시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믿는다.


“지금은 쓸모없어 보여도 시간이 지나면 보물이 됩니다.”


그래서 그는 자료를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 인쇄역사박물관이 세워진다면 그가 모아온 기록으로 한국 인쇄의 역사를 온전히 남기고 싶다는 게 그의 마지막 바람이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서울인쇄대상 다섯 차례 수상.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국세청장상, 중소기업청장상, 서울특별시장상, 산업통상자원부장관상까지. 10여 건의 일본 인쇄기 설명서를 기증해 2017년 서울역사박물관 신수유물전에 1년간 전시되기도 했다. 특히 2024년 11월 21일에는 중소벤처기업부장관으로부터 백년소상공인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표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사람과 교육이다.


KOICA를 통해 동티모르 인쇄기술 연수생 교육에 참여했고 2012년부터 2026년 현재까지 중구장학재단 이사로 활동하면서 매년 22만원에서 1천200만원까지 지역 인재 육성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이번 서울명장 상금 전액은 한국폴리텍대학과 서울공고 관련 학과 500만원씩 1천만원을 기부했다.


“인쇄업계의 가장 큰 위기는 일감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한 사람이 한 달에 1만 원씩만 기부해도 인쇄학과를 존치할 수 있고 인쇄산업의 미래를 지킬 수 있다고 그는 말한다. 실제로 대부분 관련고교나 대학에서 인쇄관련학과가 거의 없어지고 있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김 대표이사는 “포장재는 물건의 상품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있다”며 “처음부터 명장이 되기 위해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젊은 사람들이 제조업을 배우러 들어올 수 있도록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30년 된 자전거를 탄다. 본체만 남기고 부품은 모두 바꿨지만 여전히 그의 발이 돼준다. 검소한 삶 속에서 기술을 쌓고 역사를 기록해 온 사람. 서울 명장 1호 김인호. 그는 오늘도 인쇄의 시간을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찍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