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날 때, 우리는 지도를 펼칩니다. 어떤 이는 박물관과 유적지를 잇는 '모범 답안' 코스를 따르고, 어떤 이는 자신만의 맛집과 골목길을 점으로 찍어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죠.
결혼이라는 긴 여정을 앞둔 준비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해진 길을 따르는 것이 익숙했던 과거와 달리, 최근 코엑스 웨딩박람회 현장에서 만난 예비부부들의 '결혼 준비 지도'는 확실히 달라진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누군가 정해준 루트를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습니다. 그들만의 방식으로, 그들만의 속도로, 가장 '우리다운' 지도를 그리고 있었습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결혼 준비의 시작은 '스드메(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 패키지 계약이었습니다. 하지만 코엑스 웨딩박람회 현장에서 만난 그들에게 '스드메'는 필수가 아닌 '선택'의 영역이었습니다. 스튜디오 촬영을 과감히 생략하고 두 사람의 추억이 담긴 장소에서 셀프 스냅을 찍거나, 드레스 투어의 복잡함을 줄이고 마음에 드는 드레스 한 벌을 대여해 본식만 치르는 식이죠.
물론, 여전히 많은 커플이 '스드ME'의 도움을 받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남들이 하니까'가 아닌 '우리의 예산과 스타일에 맞으니까'라는 명확한 이유에서 비롯된다는 점입니다. 거대한 규모의 코엑스 웨딩박람회 부스들 사이를 누비면서도, 그들은 자신들에게 불필요한 옵션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단호함을 보였습니다. 지도의 첫 장부터 '관성'이 아닌 '주관'을 채워 넣는 모습입니다.
요즘 세대를 흔히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중시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입니다. 정확히는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까지 고려한 현명한 소비를 합니다. 결혼 준비 지도에서도 이 특징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청첩장이나 식전 영상처럼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가성비'를 극단적으로 따져 비용을 절감합니다. 하지만 일생에 한 번뿐인 허니문이나 두 사람의 취향이 담긴 예물, 혹은 정말 마음에 드는 베뉴에는 과감하게 예산을 투자하는 '프리미엄' 전략을 택하죠. 이번 코엑스 웨딩박람회에서도 합리적인 가격대의 상품을 꼼꼼히 따지는 동시에, 하이엔드 드레스나 고급 맞춤 예복 부스에도 스스럼없이 들어가 상담받는 커플들을 쉽게 볼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지도는 무조건 아끼는 지도가 아니라, '집중과 선택'이 명확한 전략 지도였습니다. 코엑스 웨딩박람회는 그런 그들의 니즈를 충족시키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장이었습니다.
과거의 결혼 준비가 정해진 '물건'을 구매하는 과정이었다면, 지금의 결혼 준비는 '경험'을 디자인하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예쁜 반지를 사는 것을 넘어, 두 사람이 직접 반지를 만들 수 있는 공방을 찾습니다. 정형화된 호텔 예식 대신, 두 사람의 스토리를 담을 수 있는 스몰 웨딩이나 야외 파티를 기획하죠.
이번 코엑스 웨딩박람회에서도 단순히 상품을 나열하는 부스보다는, '웨딩 향수 만들기', '맞춤 청첩장 디자인 컨설팅' 등 커플의 개성을 반영할 수 있는 '체험형' 부스들이 유독 붐볐습니다. 결혼 준비 과정 자체를 또 하나의 즐거운 '데이트'이자 '추억'으로 만들려는 그들의 지도는, 예식 당일뿐만 아니라 준비하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보여줍니다. 다른 코엑스 웨딩박람회에서도 이런 경향은 점점 짙어지고 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웨딩 업계에도 비대면 정보 수집이 보편화되었습니다. 요즘 예비부부들은 각종 웨딩 커뮤니티, SNS, 앱을 통해 방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손품'의 달인들입니다. 이미 웬만한 정보는 손안에 쥐고 있죠.
그렇다면 그들은 왜 굳이 코엑스 웨딩박람회 현장을 찾는 걸까요? 답은 '효율성'과 '확신'에 있습니다. 그들은 막연하게 정보를 얻으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손품'으로 점찍어 둔 업체들을 리스트업 해와서, 현장에서 직접 비교하고 최종 결정을 내리기 위해 옵니다. 즉, 코엑스 웨딩박람회는 그들에게 '시작점'이 아닌 '최종 검증 무대'인 셈입니다. 흩어져 있는 정보들을 한곳에서 확인하고, 현장 할인 혜택까지 챙기는 영리한 '발품' 전략이죠.
어쩌면 가장 큰 변화일지도 모릅니다. 예전에는 '신부의 날'이라는 인식 속에 신부와 신부의 어머니가 준비를 주도하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북적이는 코엑스 웨딩박람회 현장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풍경은, 그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상담에 임하는 예비 신랑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수동적으로 따라다니는 '짐꾼'이나 '운전기사'가 아니었습니다. 드레스 도안을 꼼꼼히 살피고, 허니문 일정표를 적극적으로 조율하며, 예복 원단을 신중하게 만져봤습니다. 결혼이 '둘'이 하는 것인 만큼, 준비 과정 역시 '함께' 해내야 할 공동의 프로젝트임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에게 치우치지 않고 함께 그리는 '결혼 준비 지도'야말로, 이들이 앞으로 헤쳐나갈 긴 여정의 가장 든든한 첫걸음이 아닐까요?
코엑스 웨딩박람회에서 만난 그들의 지도는 '정답'을 따르기보다 '우리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그 자체였습니다. 더 주체적이고, 더 합리적이며, 더 평등해진 그들의 결혼 준비 방식이, 앞으로의 결혼 문화 또한 더욱 다채롭고 건강하게 만들어 가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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