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무공기념사업회 이인섭 부위원장
중구출생 확실 충무공, 역사의식 높여야
◆ 서울시립대 배우성 국사학과 교수
이순신 장군 출생지 건천동, 확정 어려워
◆ 전쟁기념관 박재광 학예연구관
이순신 장군의 전략 많은 시사점 제공
◆ 서울시립대학교 이우태 교수
생가조성, 교육의 장으로 활용필요 있어
◆ 한국예술종합학교 최석영 교수
기념관, 도슨트 활용 프로그램 개발 필요
현재 걸음마 단계에 그치고 있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생기념 사업이 충분한 타탕성 검토, 생가유적에 대한 역사적 고증, 현실, 가능성 있는 사업 추진 방안 마련이 요구되고 있다. 이를 위해 지난 17일 충무아트홀 컨벤션센터에서는 ‘충무공 학술심포지움’을 개최하고 5명의 연구위원들이 주제발표를 하는 등 ‘충무공 탄생지의 보전과 기념사업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 충무공과 서울 중구^충무공기념사업회 이인섭 부위원장
충무공기념사업회 이인섭 부위원장이 발표한 ‘충무공과 서울 중구’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순신 장군은 중구 건천동(현 충무로)에서 태어난 역사가 확실하지만 일본이 왜곡한 저서 때문에 충남 아산에서 생장한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 이순신 장군은 32세에 무과급제한 후 함경도 수비대 권관으로 부임한 후 가족이 충남아산으로 이사했던 것이 문헌상으로 대조하면 명확히 나타나지만 출세 전 전반기 학업에 열중하고 장재(將材)로 성장한 역사는 서울 중구에 있다는 것이다.
이순신장군은 두만강 변방에서 야인들의 침략을 방어하는 데 10년을 보냈고 남해안의 침략자 임란을 방어하는데 7년 동안에 23전 23승을 승리한 절세의 영웅이다.
남쪽과 북쪽에서 국토방위에 신명을 다해 나라를 구하고 순국하신 영웅의 탄생지와 생애 전반기를 국민이 모르고 있는 것은 바로 식민지 교육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부위원장은 “많은 사람들이 일본의 왜곡으로 이순신 장군의 뿌리가 있는 곳이 중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며 “하루빨리 충무공기념관을 세워 완전한 역사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게 해 학생들의 애국사관과 역사 의식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제시한 충무공기념관 운영 방법에는 충무공 이순신의 전반기 역사 발굴교육, 일제가 왜곡한 한국역사 내용 바로잡기와 전문연구관 배치다. 이와 함께 충무공의 승전역사를 영상화 해 민족의 긍지를 기르는 활동을 강화하고 학생들의 지혜와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는 전략전술과 용기, 인격을 본 받을 만한 교재를 개발해 교육장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부위원장은 “충무공 이순신의 탄생지에서 역사 자료를 새롭게 발굴해야 한다”며 “연구실험 한 과학교제로 미래를 개척하고 충무공유적지 전적을 한눈으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건천동과 조선전기 인물^서울시립대 배우성 국사학과 교수
서울시립대 배우성 국사학과 교수에 의하면 이순신 장군의 탄생지가 건천동이라는 사실은 이충무공전서에 기록돼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 사료들만으로는 이순신 장군이 현재 건천동에서 태어났다고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배우성 교수는 “우리 역사에서 이순신 장군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한다면 그 출생지를 확정하는 것은 매우 시급하고도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건천동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바로 이 건천동의 범위에 대해서도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배 교수가 발표한 ‘건천동과 조선전기 인물’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순신 장군과 같은 시대의 삶을 살아온 소설가 허균의 ‘성소부부고’에는 청녕교(현 을지로 4가와 5가 사이)로부터 인현동 1가에 이르는 지역에 해당 된다는 것이다. 시인 조현명의 ‘귀록집’과 그가 남긴 시를 근거로 건천동의 범위가 마전교에 이어 오교 부근까지로 추측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조현명이 말한 건천동의 범위는 허균이 말한 범위에 비해 훨씬 넓으며 허균의 시대까지도 제한된 범위였던 건천동 주거지역이 시간이 지나면서 넓게 확대된 것으로 보인다.
배 교수는 “이순신 장군의 탄생지가 현재의 중구 일대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현재 충무공 전서에 기록된 건천동이 허균이 말한 ‘원래의 건천동’을 가리키는 것인지, 조현명이 말한 ‘확대된 건천동’을 말하는 것인지는 세부적으로 확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 충무공의 국토수호 의식과 행상전략^전쟁기념관 박재광 학예연구관
전쟁기념관 박재광 학예연구관은 “임진왜란기에 이순신 장군의 전략 기저에는 국토 수호에 있어서 해양, 해전의 중요성, 백성들을 보호하고 백성들과 전란을 극복한다는 인식이 깔려있다”며 “이러한 전략은 오늘날 해양자원, 안보 등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많은 시사점을 안겨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박 연구관이 발표한 ‘충무공의 국토수호 의식과 해상전략’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순신 장군은 무과를 통해 문무겸전의 학문 분야를 완벽하게 갖추고 무관직책을 수행하면서는 군에 대한 부단한 연구와 다양한 체험이 전략가로서의 능력을 키워나갔다. 특히 발포만호와 조산보만호와 같은 수군직 수행이 그가 전략가로서의 실무경험을 축적하는 데 도움이 됐다. 임진왜란 시기 그의 해양전략은 기존의 방왜육전론에 근거한 연안 방어 중심의 소극적인 해양거부전략이 아닌 적극적인 해양통제전략을 견지했다는 것이다. 전쟁 첫해인 1592년 벌어진 해전은 모두 전라도 해역이 아닌 경상도 해역으로 출전해 적극적인 ‘결전전략’을 견지해 전쟁을 극복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강화교섭기가 되면서부터는 상황이 여의치 않게 되자 이순신 장군은 수군의 전력 증강을 하는 한편 견내량을 막아 지키는 ‘현존함대전략’으로 전략을 수정했지만 이러한 이순신 장군의 전략과는 달리 상부의 지시에 따라 ‘결전전략’을 견지하고 무리한 출전 끝에 칠천량해전에서 참패를 당했다. 이후 다시 ‘현존함대전략’을 견치한 채 2개월만에 펼쳐진 명량해전에서 기적 같은 승리를 이끌어냈으며 노량해전에서는 ‘함대봉쇄전략’으로 노량의 길목을 미리 차단 후 화력의 우세를 바탕삼아 200여 척의 일본 수군의 전선을 격침시키고 승리를 거뒀다.
◈ 국내외의 생가유적 보존사례^서울시립대학교 이우태 교수
서울시립대학교 이우태 교수가 발표한 ‘국내외 생가유적 보존사례’를 통해 국내외 비슷한 시기와 비중을 갖는 인물의 생가터의 보존 방법을 통해 추후 사업 추진 시 활용 방안 등을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국내의 사례는 왕인박사, 서애 유성룡의 생가이다. 왕인박사는 일본측 기록에 의해 백제 사람이라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그의 탄생지나 생존 연대 등에 대해서는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는 정확한 고증이나 확실치 않은 역사를 토대로 유적지 등을 조성할 경우 역사를 왜곡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며 관람객들을 위한 정보제공과 학습 등에 대한 방안 또한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애 유성룡이 쓰던 유물과 왕으로부터 하사 받은 문서, 어머니의 분재기 등은 모두 보물롤 지정돼 현재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656의 충효당에 잘 보관돼 있다. 하지만 이 충효당은 그의 종가이지 생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생가는 그가 출생한 의성에 있을 것으로보이나 현재 그 위치와 당시 생가의 규모 등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유성룡이 어린시절에 생가를 떠나 한양의 건천동으로 이사한 것으로 추측된다.
국외의 사례는 일본 전국시대의 3영웅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 생가이다. 오다 노부나가는 ‘나고야성’의 니노마루정원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장소를 확정짓기 어려운 상황이다. 단지 니노마루 입구에 그가 태어났음을 알리는 조그만 안내판 하나가 서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생가인 ‘나카무라 공원’은 휴식공간으로서 자연스럽게 위인에게 다가갈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으며 문화플라자에 기념관을 두어 어린 아이들도 지역의 역사를 학습할 수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생가인 ‘오카자키 공원’은 자전거도로와 산책로를 갖추고 있어 유적지의 의미와 함께 문화 공유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크며 기념관을 두어 정보제공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무리한 생가조성은 역사적 사실을 훼손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며 “그 주변을 공원이나 기념관 등으로 꾸며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 충무공기념관(가칭) 교육 프로그램 개발(안)^한국예술종합학교 최석영 교수
한국예술종합학교 최석영 교수는 충무공기념관 교육프로그램이 도슨튼(Docent)의 활용 중심으로 개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교수는 ‘가르친다’는 의미의 도슨튼은 자원봉사자, 문화해설사와는 그 개념과 역할이 다른 박물관의 진열품을 설명ㆍ해석하고 토의와 질의에 답변할 수 있는 전문가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발표한 ‘충무공기념관의 교육프로그램 개발(안)’에는 도슨트 활용을 통한 전시 연계 교육 프로그램으로 충무공 모습 상상하기, 충무공 증시교지를 통한 조선시대 이해하기, 충무공의 성장과정, 난중일기를 통해 본 이순신 장군의 행적 살피기 등을 제시했다.
이 외에 충무공기념관 전시와 교육프로그램 개발로 충무공 탄신 다례(茶禮), 현충사 행사와의 연계, 기타 박물관 도슨트 교육 프로그램 운영과 강좌개설을 꼽았다.
충무공 탄신 다례는 기념관 건축 일부를 다례 공간으로 조성하고 이곳에서 다례의례를 연 1회 열어 기념관 설립 취지에 부합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와함께 이순신 장군의 외가인 아산 현충사에서는 제향의례로 이원화해 서울의 기념관과 아산의 현충사와 상호 연계하면서 종합적, 차별화된 전시, 교육 프로그램의 운영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강좌개설은 난중일기 강독반, 서예반, 충무공 흔적 답사, 충무공 연극, 이순신 관련 제작된 영화상영 등을 운영 방안으로 제시했다.
최 교수는 “충무공 생가 터에 단순히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며 “관람자에게 친근한 이용기관이 될 수 있도록 무엇보다 교육적 기능을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