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월칠석(七夕)의 유래와 풍습

강지원 lhy@jgnews.co.kr 2009.08.27 10:35:07

민족 2대 명절 중 하나 칠월칠석

지금은 칠석제로 명맥만 유지

26일, 한옥마을서 칠석문화제

 

26일은 견우와 직녀가 만난다는 칠월칠석이다. 중구 남산골 한옥마을에서는 칠석날 오후 6시부터 칠석문화제보존회 조직위원회(위원장 석선혜)가 마련한 제5회 칠석문화제가 개최된다.

 우리 민족은 정월대보름과 함께 칠월칠석을 나라의 2대 명절로 즐겨왔으나, 오늘날에는 발렌타인데이와 같은 외래문물에 밀려 불교식의 칠석제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칠석문화제보존회에서 칠석명절이 우리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행해질 수 있도록 칠석제를 복원해 전통문화를 계승 발전시키고자 매년 행사를 진행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석선혜 위원장은 “전통의 맥을 잇는 작은 힘이 되고자 제5회 칠석문화제를 중구 남산골 한옥마을 천우각(泉雨閣) 광장에서 개최할 예정”이라며 “칠석제와 관련된 문화제 행사와 함께 봉행할 계획이니 꼭 참석해 즐기고 자리를 빛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식전행사로 ‘솟대 풍물 신명 일깨우기’를 마치면 시작되는 칠석제는 전례(前禮)인 명촉례(明燭禮), 수정례(水精禮), 산화(散花), 헌다례(獻茶禮), 헌곡례(獻穀禮), 헌과례(獻果禮), 헌화례(獻花禮)와 본례(本禮)인 타고(打鼓), 분향례(焚香禮), 참신(參神), 소지례(燒紙禮), 고유례(告由禮), 삼헌례(三獻禮), 칠성청례(七星請禮), 전폐례(奠幣禮), 대축례(大祝禮), 음복례(飮福禮), 헌관 배례, 예필(禮畢) 등의 순으로 진행되며 서울국악관현악단의 제례악 연주인 영산회상이 이어진다.

 

 칠석제 문화행사는 칠석 시 낭송, 칠석 창작 다예무, 풍물놀이(선반), 클래식기타 연주, 복떡 나눠먹기, 솟대에 매단 소원지를 태워 올리는 비나리, 다과회인 회향식으로 이어져 참석한 중구민들도 흥겨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 견우와 직녀

 

 천제(天帝)의 딸인 직녀는 매일 베를 짜는데 온갖 정성을 쏟으며 다른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공주였다. 이것을 가엾게 여긴 천제는 하늘의 강 건너편에 살고 있는 견우(소치는 목동)에게 시집을 보냈고, 견우와 직녀는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됐다. 그러나 그 후로 직녀는 전혀 베를 짜지 않았고 견우도 소를 치는 일을 게을리 했다. 이것을 보고 화가 난 천제는 직녀를 다시 데리고 돌아왔지만 이 둘의 슬퍼하는 모습을 보고 일년에 한번 칠월칠석 저녁에만 하늘의 강을 건너 만나는 것을 허락했다. 둘은 칠월칠석 저녁마다 하늘의 강을 건너 만났는데 어느 해 칠월 칠석은 공교롭게도 비가 너무 많이 내려 강의 물이 불어나서 건널 수 없게 돼버렸다. 이 때 까치들이 날아와서 다리를 만들었고 견우와 직녀는 그 다리를 건너 서로 만날 수 있게 됐다.

 

 ◈ 칠석(七夕)

 

 칠월칠석(七月七夕)은 음력 7월 7일에 각종 햇과일과 가지, 오이, 계피떡, 밀전병, 밀국수와 여름 생선, 고사리와 취나물 등으로 제수(祭需)를 차려서 칠성님께 제사를 드리고 수명장수와 집안평안 등을 기원하는 고유의 세시풍속으로 옛날에는 중요한 여름 명절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칠석 전날 밤, 자시(子時: 23시~01시)에 여인들이 고운 재를 깔아 놓은 쟁반 위에 놓인 정화수(情華水)를 장독대에 올려놓고 기원을 한 후, 재 위에 무슨 흔적이 있으면 바느질 솜씨가 좋아진다고 믿었으며, 북한에서는 풍작을 비는 밭제(田祭)를 지내기도 했다.

 

 불가(佛家)에서도 칠성기도를 드리는데, 북두칠성(北斗七星)을 칠원성군(七月星君)이라 해 일곱 부처(七聖如來)를 가리킨 것이라고 한다.

 

 지혜와 신통이 헤아릴 수 없으며 모든 중생들의 마음을 잘 알아서 여러가지 방편으로 고통을 없애주고, 수명을 늘려주고, 복을 내려주며, 생명을 점지해 주는 탄생신으로 여겨왔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또다른 이야기로는, 칠월 칠석부터 여름장마가 끝나므로 옷과 서책들을 햇볕에 말리는 거풍(擧風)의 풍속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이 날은 음기(陰氣)가 천기(天氣)의 주도권을 잡는 시기라 해서 우물을 청소하고 새로 고인 천일생수(天一生水: 칠석날 천기가 충만한 물)로 술을 빚고 장을 담그며 차를 다려 칠석제를 지냈다고 한다.

 

 이러한 풍속문화는 고조선 이전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며, <삼국유사>, <동국세시기>, <조선상식(최남선)>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 고구려 덕흥리 고분벽화에 견우직녀가 헤어지는 장면이 묘사돼 있는 것은 당시 칠석문화를 중요시 여겼다는 뜻이다.

 

 북두칠성(北斗七星)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은하수(銀河水)가 쏟아질 듯이 화려하게 늘어져 있는데 동쪽에 희미하게 비치는 직녀성(織女星: Wega)과 서쪽에서 남성적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견우성(牽牛星: Dabih)이 마주보며 정겨워하다가 은하수(銀河水)의 오작교에서 1년만에 만나서 사랑을 나눈다는 극적인 이야기가 남녀의 사랑에 대한 설화의 소재가 돼 칠석시, 애정시, 노래로 지어져 불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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