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상공회의소 중구상공회(회장 이창환) 2025년도 제21기 최고 경영자 과정인 CEO아카데미 수강생들이 5월 29일 조선왕조가 세운 으뜸궁궐인 경복궁을 문화탐방 했다.
이 자리에는 수강생 30명과 이창환 회장을 비롯해 장주홍 이영수 임수연 수석부회장, 이태영 감사, 이사 등 임원 18명이 광화문 매표소에 집결해 거의 2시간 동안 투어했다.
이날 문화탐방은 문화해설사가 동행한 가운데 △광화문 △흥례문 △근정전 △자선당 △교태전 △자경전 십장생 굴뚝 △아미산 굴 △경회루 △수정전 등을 구석구석 돌아보며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선왕조를 연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하고 가장 먼저 경복궁을 조성했다.
1394년(태조3) 12월 4일 시작된 이 공사는 이듬해 9월 중요한 전각이 대부분 완공됐다.

궁의 이름은 시경(詩經)에 나오는 왕조의 큰 복을 빈다는 뜻으로 '군자만년개이경복'(君子萬年介爾景福)에서 따왔다고 한다. 5대 궁궐 중 가장 먼저 지어졌지만 별궁인 창덕궁(昌德宮)에 비해 왕들이 머문 기간은 훨씬 짧은 것으로 전해졌다.
왕자의 난으로 인한 개성천도와 왕위를 찬탈한 세조가 경복궁을 기피해 창덕궁에 기거하면서 임금이 살지 않는 궁이 됐고, 38년 뒤 임진왜란으로 인해 모든 건물이 불탄 후 270여 년간 폐허상태로 있다가 1865년(고종 2) 대규모 재건공사가 시작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해설사는 당초 정도전이 구상해서 지었던 근정전은 기록이 없어 현재와 얼마나 다른지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지만 임진왜란 이후에도 조선전기 궁궐조성의궤가 남아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으로 광화문 앞 거리는 육조와 기타 관청들이 모여 있는 거리라 하여 육조거리라 불렀다.

흥례문(興禮門)은 경복궁의 중문으로 ‘흥례’는 ‘예를 일으킨다’라는 뜻이다. 원래 홍례문의 이름은 ‘홍례문’이었으나 1867년(고종 4)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 지금의 이름으로 바꾸었다. 흥례문은 일제강점기 때 조선총독부 청사를 지으면서 철거됐다가 1996년 조선총독부 청사를 철거한 후 2001년에 복원했다.
근정전(勤政殿)은 경복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궁중연회 등 중요한 국가행사를 치르던 곳이다. 근정전의 ‘근정’은 천하의 일을 부지런히 하여 잘 다스리다‘라는 뜻으로, 궁궐 내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춘 건물로 면적도 가장 넓게 차지하고 있다.
근정전 앞마당, 즉 조정(朝廷)은 다른 궁궐의 정전과 같이 박석이 깔려있고, 중앙에는 삼도(三道)를 두어 궁궐의 격식을 갖추었으며 조정에는 정1품부터 정9품까지의 품계석을 놓았다.
월대의 귀퉁이나 계단 주위 난간 기둥에는 4신상과 12지신상을 포함해 28수 별자리상 등을 간결하지만 재치있게 조각했다. 어좌 뒤에는 왕권을 상징하는 해와 달, 다섯 봉우리의 산이 그려진 ‘일월오봉도’를 놓았고 천장에는 칠조룡을 조각해 장식했다. 근정전에서는 정종, 세종, 세조, 중종, 선조가 왕위에 올랐으며, 1985년 국보로 지정됐었다.
교태전(交泰殿)은 강녕전과 함께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던 침전이자, 왕비의 생활공간이다. ‘교태’는 ‘천지, 음양이 잘 어울려 태평을 이루다’라는 뜻이다. 교태전은 궁궐의 가장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어, 왕비의 생활공간이기 때문에 중궁전이라고도 부른다.
경회루는 외국 사신의 접대와 연회를 베풀던 곳으로 현재의 건물은 1867년(고종 4) 다시 지은 것이다.
이창환 회장은 “오늘 문화탐방은 해외 패키지여행을 온 것처럼 대단했다”며 “조선왕조 500년 역사의 숨결과 함께 우리 모두가 친해지는 계기가 됐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슴 떨릴 때 여행을 해라, 다리 떨리면 여행을 못한다”라는 일화를 소개하고 “ CEO아카데미 21기 여러분들이 중구상공회 활성화에 큰 버팀목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